[종합] ‘바람의 옷’ 남기고 떠난 한국의 샤넬,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별세

입력 2018.05.17 11:08 | 수정 2018.05.17 13:00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가 1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조선DB
"옷이 날개라는 말을 한국의 속담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에 만들어낸 마술사 이영희. 그녀로 인해 우리는 옷이 아니라 문화를 입는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가 17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한 달 전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노환 등으로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영희는 전통 한복을 현대적 감성과 생활에 맞게 개발하고 변형시켜 한복의 다양화와 세계화에 기여한 한복 디자이너이다.

1994년 한국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쇼에 올라 맨발에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를 선보였다. 당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패션 전문기자 로랑스 베나임은 그 옷에 '바람의 옷'이란 별칭을 붙여줬다. 전통을 뒤집은 과감한 디자인이었지만, 외국인들 눈엔 한복의 고운 선이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최고의 디자인이었다.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바람의 옷’이란 찬사를 얻은 이영희의 한복/김중만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업주부로 살다가 1976년 마흔에 뒤늦게 한복 디자이너 길로 들어섰다. 친척 언니의 비단 이불을 팔아주고 남은 천으로 한복을 해 입었는데, 주변에서 한복을 지어달라고 성화를 했다. 그 길로 1977년 '이영희 한국의상'을 개업했다. 1983년 백악관 초청 미국독립기념 축하 패션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회 개·폐막 기념 패션쇼, 19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패션쇼를 열었다.

이후 2000년 뉴욕 카네기홀 패션 공연, 2004년 뉴욕 이영희 한복 박물관 개관, 2007년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한복 전시, 2008년 구글 캠페인 ‘세계 60 아티스트’ 선정 등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로 우뚝 섰다. 2009년엔 북한 평양에서 열린 분단 이후 첫 남북 합작 패션쇼에서 ‘민속옷 전시회’를 열어 주목받았다. 당시 고인은 “내 생애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영희의 꿈은 ‘동양의 샤넬’이 되는 것이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인이 한복을 많이 입어 '한복(HanBok)’이 고유명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두루마기형 재킷, 한복 치마에서 변형된 원피스, 자연스러운 멋을 살린 바지 등 한복의 새로운 디자인과 소재 개발에 공을 들였다.

평생 한복의 다양화와 세계화에 앞장서온 고인에겐 ‘색의 마술사’ ‘날개 짓는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조선DB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저고리 없는 한복 드레스를 선보인 것도, 서양의 입체 재단과는 다른 한복의 잠재력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는 “내가 한복 드레스를 내놓기 전까지 서양 드레스는 가슴선이나 허리선이 잘록 들어간 형태였다. 난 평면 재단으로 12폭으로 장대하게 펼쳐지는 드레스를 내놨다. 가슴 위에서 여며진 끈이 아래로 늘어지는 디자인은 서양인들에게 굉장히 전위적으로 받아들여졌다”라고 회상했다.

이영희의 한복 인생은 혁신의 연속이었다. 한복에 처음 수(繡)를 놓은 것도, 한복은 원색의 옷이란 고정관념을 깬 것도 그다.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연 첫 패션쇼에서 선보인 먹색과 와인 자줏빛의 오묘한 치맛자락은 은은하면서도 강렬했다. 그의 이름 뒤엔 ‘색의 마술사’ ‘날개를 짓는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랐다.

이영희는 지난 2월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한복 의상을 디자인할 만큼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전통을 부수고 혁신을 일으킨 개척자였던 ‘이영희의 치맛바람’은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딸 이정우 디자이너, 장남 이선우, 차남 이용우 등 3남매가 있다. 외손자 며느리는 배우 전지현이다. 전지현은 2012년 고인의 외손자인 최준혁 씨와 결혼했다. 빈소는 삼성병원장례식장 17호. 발인은 1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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