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날 같은 삶, 그러나 사랑으로 뚜벅뚜벅

입력 2018.05.17 03:00

등단 30년 맞은 시인 박철·조은 '사랑' '어둠' 노래한 시집 출간

박철(왼쪽), 조은
박철(왼쪽), 조은
쉰여덟 동갑내기 시인 박철과 조은이 시력(詩歷) 30년을 넘기며 나란히 새 시집을 냈다. 1987년 등단한 박철 시인은 아홉 번째 시집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창비)를 펴냈고, 1988년 데뷔한 조은 시인은 다섯 번째 시집 '옆 발자국'(문학과 지성)을 엮었다.

두 시인은 30년 시작(詩作)으로 깊어진 내공을 발휘했다. 저마다의 열쇠어는 사뭇 대조적이다. 박철은 '사랑'이고, 조은은 '어둠'이다. 박철은 시 '빛에 대하여'를 통해 '빛처럼 스미는 사랑'을 노래했지만, 낭만적 사랑을 읊진 않았다. '사랑도 노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도 일생을 노동자로 살아온 셈'이라며 '내가 사랑을 하였다는 얘기가 아니라/ 거친 내 일생이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를 떠들고 있었다'며 일상적 사랑의 신산(辛酸)을 암시했다.

시인이 사랑을 노동에 비유한 까닭은 부부의 인연을 노래한 시 '악연(惡緣)'에 잘 나타난다. '언제나 아픕니다/ 아내의 투병은 나를 향한 것이고/ 나의 투병은 아내의 과녁으로 날아갑니다'라며 일상을 투병에 비유했다. 병치레 잦은 부부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고해(苦海)로 불리는 삶 전체를 가리킨다. 힘든 일상은 부부 싸움 때문에 지옥이 되지만 묘하게 시인의 언어는 해학적이다. '습관처럼 날 선 말이 쇳소리를 낼 때마다/ 던진 말대로 둘 중의 하나만 악연이면/ 같이 못 삽니다/ 그러나 둘 다 악연이면 참고 삽니다'라며 능청을 떤다. 악연끼리 만난 인연의 역설적(逆說的) 사랑인 셈. 그렇게 눙친 시인은 '해를 쫓는 달을 보셨나요/ 사랑하진 않아도 버리진 못합니다/ 뜨뜻미지근한 안타까움이 조금 남아 있다고나 할까'라고 한다. 연민에서 우러난 사랑이야말로 비루한 삶을 구원할 빛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조은 시인은 시집 곳곳에 어둠을 배치했다. '한밤에 일어나/ 유언의 문구를 고르듯/ 그릇을 집어/ 차곡차곡 쌓는다'로 시작한 시 '어둠의 질감'을 비롯해, '뿌리 뽑히지 않는 내 어둠'이나 '어둠의 지문 같은 그림자'란 이미지가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어둠은 곧 새벽에 밀린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불안하게 눈을 뜨던/ 여느 때와는 달랐다/ 내 마음이 어둠 속에서 죽순처럼 솟아 있었다'며 '흰 종이에다/ 떨며 썼다/ 어느 새벽 처음으로…'라고 했다. 어둠 속에서 숙성된 시가 빛을 만나 백지(白紙)로 옮겨진 것.

시인은 새벽마다 '빛의 심지 같은 몸을/ 힘겹게 일으킨다'고 했다. 심지어 '밤새 염도가 높아진/ 물방울이/ 촛농처럼 떨어진다'는 3행시 '꽃의 눈물'을 통해 한밤중에 흘린 눈물이 동틀 무렵 꽃에 맺힌 이슬로 정화되는 순간을 선명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마지막 시는 '빛에 닿은 어둠처럼'이다. 시인은 '살아간다고 믿었을 땐/ 죽어가고 있었고/ 죽었다고 느꼈을 땐/ 죽지도 못했다'라고 했지만 '아직도/ 작두날 같은 경계에 있다'며 꿋꿋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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