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467] 불수고방(不守古方)

조선일보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8.05.17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때 진법의 도형을 인쇄해서 변방의 장수에게 내려주었다. 왕덕용(王德用)이 간하였다. "병법의 기미는 일정치가 않은데 진도(陣圖)는 일정합니다. 만약 옛 법식에 얽매여 지금의 군대를 쓴다면 일을 그르치는 자가 있게 될까 걱정입니다."

    또 전을(錢乙)은 훌륭한 의사였는데 옛 처방을 지키지 않았고(不守古方), 때때로 이를 뛰어넘어 무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끝내는 법에 어긋나지 않았다.

    청나라 때 원매(袁枚)는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 두 예화를 통해 시문 짓는 법을 깨달을 수 있다고 썼다. 고식적으로 정해진 법식에만 집착하면 그것은 활법(活法)이 아닌 사법(死法)이 되고 만다.

    유득공(柳得恭)이 '추실음서(秋室吟序)'에서 한 말은 이렇다. "옛날의 의사는 질병에 한 가지 약초나 약재(藥材)를 투약하면 병이 잘 나았다. 본초(本草)가 날로 늘어나고 의학이 점점 발전하자 어쩔 수 없이 맵고 단것을 섞고 순하고 독한 것을 합하여, 군(君)과 신(臣)이 있고, 돕는 것과 부리는 것이 있게 되었다. 그런 뒤에야 훌륭한 약제(藥劑)로 여긴다. 한 가지 약초나 약제로 지금 사람의 병에 투약하여 스스로 옛 처방임을 뽐낸다면 바보가 아니면 망령된 사람이다."

    약에 대한 내성이 달라지고, 식생활 환경이 바뀌면 예전의 신통한 처방도 아무 효과가 없게 된다. 통변(通變)의 정신이 필요한 까닭이다.

    정약용(丁若鏞)의 말은 또 이렇다. "옛 사람은 의학을 배울 때 본초를 위주로 해서 이따금 직접 맛을 보아 그 성질과 맛, 기분 등을 시험해서 하나하나 분명하게 안 뒤에 조제하여 약을 지었다. 그래서 약을 잘못 쓰는 일이 없었다. 지금 사람은 만들어진 처방만 배우기 때문에 의술이 날로 못 쓰게 되어 간다." '복암이기양묘지명(茯菴李基讓墓誌銘)'에 나온다.

    약재의 개별 성질을 파악한 뒤 원리를 적용하면 그 안의 변화가 무궁하다. 약재의 성질은 모른 채 처방만 외우려 들면 발전이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을 잡는 수가 있다. 같은 질병도 환자의 상황이 다 다르니 고식적으로 외워 적용할 수가 없다. 변화에 적절하게 응하려면 역시 기본기를 잘 닦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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