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금융 개혁, 뭣이 중헌디?

조선일보
  • 김홍수 경제부장
    입력 2018.05.17 03:12

    금융 산업 先進化 제쳐놓고 '삼성 손보기'에만 열 올려
    과도한 규제에 가로막혀 정작 핀테크 등 혁신은 실종

    김홍수 경제부장
    김홍수 경제부장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낙마 이후 '금융 개혁'이 뉴스 실시간 검색어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동안 잊혔던 이 말이 새 생명을 얻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功)이다. 문 대통령은 김 원장이 도덕성 논란으로 궁지에 몰리자 이례적으로 대통령 입장문을 발표했다.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이 있을 것입니다. 주로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인사권자의 고충을 토로하고자 한 건데, 관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대목이 화근이 됐다.

    발언 이후 두 금융 당국이 경쟁적으로 '금융 개혁' 화두를 꺼내 들었다. 김기식 원장 낙마 나흘 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간부회의에서 "금융회사가 보유 중인 대기업 계열사 주식을 매각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삼성생명 이슈를 꺼냈다. 최 위원장은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해당 금융회사가 아무런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 개정 이전이라도 금융회사가 단계적, 자발적 개선 조치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방안을 적극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발언이 논란이 되자 최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 문제는 자산 편중 리스크(삼성전자 주식 쏠림)가 핵심"이라고 보충 설명했다. 매년 50조원 이상 이익을 내는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게 '자산 편중 리스크'라니? 수용하기 힘든 진단이다.

    금융감독원도 '금융 개혁' 대열에 가세했다. 수장(首長)도 없는 가운데, 넘버 2인 유광열 수석부원장이 재벌계 금융회사 임원들을 모아놓고 삼성생명의 계열사 지원에 대해 경고했다. 금감원은 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를 전격 공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두 금융 당국이 '금융 개혁=삼성 손보기'라는 프레임 짜기 경쟁을 벌이는 것 같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문제가 금융 개혁과 무슨 상관인가. 설혹 관련이 있더라도 우선순위가 그렇게 높은 과제인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중 금융 관련 과제는 3가지다.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가계부채 위험 해소(21번 과제),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22번), 서민 재산 형성 및 금융 지원 강화(29번) 등이다. 이 중 21번, 29번 과제는 어느 정도 진도를 뺐다. 법정 최고 금리 인하, 소멸시효 완성 채권 소각 등 손쉽게 선심 쓰는 정책들이다.

    반면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분야는 성과가 전무하다. "자유로운 진입 환경을 조성해 금융업의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겠다" "빅데이터·핀테크 등 혁신적 금융 서비스의 개발, 유통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뿐이다. 정부 공언대로 금융 분야의 과점 구도를 깨트리고 경쟁을 촉진하면 소비자 권익은 절로 향상될 것인데, 이런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언젠가부터 한국 금융시장에선 혁신의 씨가 말라 버렸다. 1982년 신한은행의 등장과 대출 커미션 수수 금지 등의 혁신 경영으로 은행권의 대출 갑질이 사라졌고, 2000년대 초반 현대카드의 디자인 경영이 돌풍을 일으켰던 것 외에 혁신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뱅크 2곳이 등장했지만, 금산(金産) 분리 규정에 발이 묶여 '메기' 역할을 못 하고 있다.

    핀테크 산업은 과도한 개인 정보 보호 탓에 질식할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당국은 금융 개혁이 마치 삼성 이슈인 것처럼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 금융 당국에 묻고 싶다. 금융 개혁, 뭣이 중헌디? 금융 개혁의 본질을 더 이상 흐리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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