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46] 멜빌의 '포경선'

조선일보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2018.05.17 03:08

    1848년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캘리포니아에서는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동부 도시에 퍼졌다. 1850년대 미국은 철로를 통해 동부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서부의 미개척지로 뻗어나갔다. 금을 좇는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들던 그 시절, 31세의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은 아침마다 책상 앞에 앉아 오후 4시까지 소설을 써 나갔다. 21세 청년 이슈마엘은 '요원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을 품고 에이허브 선장이 모는 포경선에 올랐다.

    [장석주의 사물극장] [46] 멜빌의 '포경선'
    멜빌은 지구를 뒤덮은 바다라는 황무지에 주목했다. '바다는 스스로를 잡아먹는다. 바다의 모든 짐승들은 서로를 잡아먹으며 천지개벽 이래 끝나지 않은 전쟁을 벌인다.' 그는 본디 고래잡이 선원으로 포경선을 타고 남태평양을 전전했던 사람이다. 때로는 마법 같은 고요로 매끄러운 비단 같고, 때로는 용틀임 치는 험난한 바다에서 흰 고래를 쫓는 '모비 딕'은 전통 서사 양식에서 크게 벗어난 작품이다.

    해양소설 '모비 딕'이 처음 나온 것은 1851년이다. 멜빌은 자신이 겪은 해양 모험을 담은 첫 소설을 펴내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 뒤로는 내리막길이었다. 바다의 위협에 맞서며 흰 고래를 쫓는 경이롭고 장엄한 소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 겨우 3715부가 팔렸다. 멜빌은 '모비 딕'의 판매고에 낙담했다. "돈이 나를 저주하네요"라고 고백할 정도로 생활고에 쫓겼다.

    멜빌은 "인생은 아주 짧고, 너무나 터무니없고 부조리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한 편지에서 썼다. 1863년,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가족을 이끌고 버크셔즈에서 뉴욕시로 이사했다. 그는 소설을 접고 스무 해 동안 세관 검사원으로 일했다. 1880년대에 뜻밖에 유산을 상속받자 세관 일을 그만두고 뉴욕시 26번가의 방에 칩거하며 읽고 쓰기를 이어 갔다. 멜빌은 두 번째 걸작인 '빌리 버드'를 완성하고 1891년 72세로 세상을 떴다. 그의 집필대 안쪽에 메모가 적혀 있었다. '젊은 날의 꿈을 저버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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