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 ‘사이비 우국지사’라 부른 볼턴과 악연…리비아식 비핵화 강력 반발

입력 2018.05.16 13:41 | 수정 2018.05.17 06:45

김계관<사진>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16일 미국 정부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면 6월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김 제1부상은 특히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이 원칙인 리비아식 핵 폐기 방식에 강력히 반발하며, 이를 주장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사이비 우국지사(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사람)’라고 비난했다.

김 제1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낸 담화를 통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튼(볼턴 지칭)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선 핵포기, 후 보상’ 방식을 내돌리면서 그 무슨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의 완전 폐기’니 하는 주장들을 꺼리낌(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며 “이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채로(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핵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리비아식 모델은 대북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이 과거부터 주장해 온 북한 비핵화 해법이다. 먼저 완전한 핵포기를 선언하고 검증까지 끝낸 후에 제재 해제 등의 보상을 주는 방식이다. 북한은 비핵화 단계별로 보상을 얻어내는 방식을 주장하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계속 밝혀 왔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2018년 5월 13일 미국 ABC뉴스의 ‘디스 위크’에 출연해 미·북 정상회담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ABC뉴스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은 미국 정부와 오랜 협상 끝에 2003년 12월 핵·생화학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리비아는 완성 단계의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미국은 볼턴이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2001년 5월~2005년 7월)으로 일하던 2004년 1월 리비아에 군 수송기를 보내 핵무기 제조에 관한 서류와 장비 25t을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 연구소로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같은 해 리비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일부 해제했고 리비아는 2005년 10월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했다.

그러나 카다피는 6년 후인 2011년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 혁명 당시 반군에게 죽음을 맞았다. AP는 “김정은은 카다피가 사망한 직후 집권했고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 맞서 핵개발을 정당화하는 데 카다피의 죽음을 이용하곤 했다”며 “일부 전문가는 리비아를 거론하는 것은 북한과의 협상 진전을 탈선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볼턴은 올 3월 NSC 보좌관에 내정된 후 그가 과거 언급한 리비아식 해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내가 과거에 했던 이야기들은 다 지나간 일”이라며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취임 후인 지난달 30일 리비아식 해법을 다시 꺼냈다.

이어 그는 이달 13일 방송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모든 핵무기를 오크리지로 가져가 직접 폐기하겠다”며 리비아식 모델을 언급했다. 리비아 때처럼 북한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핵물질을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 처리 장소를 언급한 것은 볼턴의 발언이 처음이다.

(왼쪽 사진)北核 옮겨놓을 오크리지 연구소 - 카자흐스탄·리비아의 고농축우라늄과 핵개발 장비 등이 보관돼 있는 미국 테네시주(州)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전경. (오른쪽 사진)2004년 리비아 核장비 둘러보는 부시 -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4년 7월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를 찾아 리비아로부터 넘겨받은 핵무기 제조 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오크리지 연구소 홈페이지·백악관, 조선DB
CNN은 “카다피가 2003년 핵포기 선언 후 8년이 지나 미국 정부가 카다피에게 등을 돌렸고 카다피는 반군 손에 사망했다”며 “김 제1부상이 볼턴의 발언을 언급하며 리비아 모델을 따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김 제 1부상은 볼턴과 악연을 갖고 있다. 볼턴은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 유엔 주재 미 대사(2005년 8월~2006년 12월)로 근무하며 대북 강경 입장을 유지했다. 미국 정부가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제재하며 김정일의 통치자금 2500만달러를 동결했을 때 당시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였던 김 제1부상은 “피가 마른다”고 했었다. 북한은 이제 볼턴이 백악관 안보사령탑으로 돌아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주도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다.

김 제1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이미 볼튼이 어떤 자인가를 명백히 밝힌 바 있으며 지금도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