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란 잔인한 말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5.16 03:01

    [연극 리뷰] 얼굴도둑

    세상 모든 사람 얼굴이 엄마로 보이는 장애를 앓는 한민(이지혜·오른쪽)의 눈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황선화)만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
    세상 모든 사람 얼굴이 엄마로 보이는 장애를 앓는 한민(이지혜·오른쪽)의 눈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황선화)만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 /국립극단
    로펌 변호사로 잘나가던 딸 한민(이지혜)이 죽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참혹하게. 엄마(성여진)는 딸이 죽은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딸이 생전에 말하던 알 수 없는 말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과거와 현재, 실제와 환상이 뒤섞이고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딸의 옛 남자친구가 얽혀든다. 인물들은 '그날'의 진실을 향해 빠르게 끌려들어간다.

    국립극단(예술감독 이성열)의 올해 첫 창작 신작 '얼굴도둑'(연출 박정희)은 서늘하게 날 선 얼음칼 같다. 잠시 긴장을 풀었다간 그 칼날에 마음이 베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야' 혹은 '내 맘 알지?' 같은 말을 한다. 실은 우습고 잔인한 말이다. 사랑하면 강요해선 안 된다. '당신'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 던진 말이라면, 어떤 칼보다 날카로운 비수가 될지도 모른다. '얼굴도둑'의 이야기는 심리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애증의 흉터가 덕지덕지 겹친 모녀 이야기에 집중한다. 잘난 딸에게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투영한 엄마, 엄마를 위해 속울음을 삼키며 버텼던 딸의 갈등과 상처가 나선형 계단을 뛰어오르듯 고조된다. 결말에 다다랐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해 머릿속에 굳어졌던 관념의 얼음장이 쩍 하는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간다.

    결말까지 이르는 극적 설계는 치밀하다. 가끔씩 무대 위가 암전(暗轉)되고 속삭이는 목소리와 스피커의 하울링처럼 '삐이~' 하는 음향만 남으면, 관객의 머릿속은 엄마의 마음을 투영하는 스크린처럼 바빠진다. 연출은 페이스 조절 잘하는 장거리 육상 선수 같다. 서둘지도 뒤처지지도 않으며 꾹꾹 눌러 담는 드라마에 흐트러짐이 없다. 결말의 충격은 평균 이상이다. 심약한 관객은 주의가 필요할 만큼.

    서울역 뒤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6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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