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K-팝 열전] 33만장 신기록... '다국적 치어리더' 트와이스의 성공 비결

  • 김작가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8.05.16 06:00

    박진영 식 소녀 연출법은 실패가 없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선발된 다국적 걸그룹
    ‘What Is Love?’ 앨범… 걸그룹 단일 판매 최고 기록

    트와이스가 최근 발매한 ‘What is love’ 앨범은 33만 장 이상이 판매됐다. 걸그룹 단일 앨범 최고 기록이다./트와이스 공식 페이스북
    음악은 들리며 다가온다. 라디오에서건, 거리에서건, 아니면 흝어올리는 SNS의 타임라인에서건 무심코 들려온 음악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중 많은 음악은 끝까지 들려지지 못한 채 사라진다. 몇몇 음악만이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음악만이 들리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바뀐다.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간 후 듣고 싶어질 때마다 재생된다. 수동의 음악에서 능동의 음악으로 자리 잡는다. 어떤 음악을 능동화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 음악은 히트곡이 된다. 거기서 더 나가면 언제 어디서나 들리는 음악이 된다. 인기곡이라는 이름으로, 지겹도록 들리는 음악이 된다.

    여기까지 오는 음악은 극소수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한 시대의 배경이 되는 음악만이 그 단계를 거친다. 트와이스는 그런 노래들을 가지고 있다. 2016년을 지배했고 지금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Cheer up’ 같은 노랫말이다.

    ◇ 한국, 일본, 대만의 소녀들이 치어리더 콘셉트로 뭉쳤다

    대중문화상품에 투입되는 자본은 클리셰와 정비례한다. 더욱 많은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그렇다. 아이돌 또한 그렇다.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붉은 바닷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왔다. 그렇기에 성공률이 높은 캐릭터를 차용한다. 걸 그룹이라면 청순하거나, 귀엽거나, 섹시하거나. 이 세 가지 단어에서 대체로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에 걸 크러시 정도를 더할 수 있겠지만 그리 많지 않다.

    2010년 이후 데뷔한 걸 그룹 중 가장 빠르게, 가장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트와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 3국 출신으로 멤버를 구성했고 결성 과정을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제작했다. 특별할 게 없다. 그렇게 등장한 9명의 콘셉트는 치어리더였다. 할리우드 틴 무비의 필수요소처럼 각인된 그 캐릭터들과 차별화된 게 있다면 영화 속 치어리더들에게는 없는 애교 정도였다.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없는, 따라서 리스크도 클 수밖에 없던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한국, 일본, 대만의 9명의 소녀들이 치어리더 콘셉트로 활기찬 에너지를 선보인다./트와이스 공식 페이스북
    우선, JYP의 여성 아이돌이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환기해보자. ‘성인식’ 시절의 박지윤, 한국 걸그룹 시장의 판도를 바꾼 원더걸스, 수지를 배출한 미쓰에이까지, 수는 많지 않았지만, 화제의 집중도는 높았다. 90년대부터 성적 욕망을 찌르는 탁월한 재주가 있던 박진영이다. 그 자신이 일관되게 욕망을 노래했고, ‘비’라는 페르소나를 내세워 21세기로 넘어왔다.

    박지윤으로 시작된 일련의 여성 아이돌 프로젝트는 남성들이 가진 여성 판타지의 변주였다. 소녀들을 어떻게 연출해야 남성들이 반응하는지를, 박진영은 안다. 다른 걸그룹들에 비해 평균적인 외모가 뛰어나다는 게 트와이스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또한, 9명의 캐릭터와 역할이 잘 분산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인기라는 파이를 고루 분배하는 효과를 가진다. 남성 중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 아이돌 멤버 투표가 열릴 때 트와이스 멤버들 전원이 상위권에 오르는 건 그 때문이리라.

    ◇ 땀내 물씬 나는 소녀들의 건강한 목소리

    콘셉트와 비주얼만으로는 온갖 차트를, 그것도 실시간이 아닌 연간 차트를 휩쓸 수 없다.
    트와이스의 음악은 ‘훅’ 그 자체다. 타이틀곡으로 발표되는 모든 노래에는 반드시 기억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이 존재한다. 이른바 ‘싸비’라 불리는, 곡의 절정부에서 어떻게든 듣는 이의 귀를 뚫고 기억에 남는 지점을 만들어낸다. 기승전결 중 ‘전’에 올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곡 ‘OOH-AHH 하게’부터 최근 곡인 ‘What is Love?’까지 예외가 없다. 음을 끊어친다던가, 불협화음을 배치한다거나, 다른 음색의 코러스를 입히는 식으로. 속도감 넘치는 템포와 쪼개지는 비트 위에서 미끄러지고 점프하는 이 포인트들은 역시 빠르게 몰아치는 멜로디 속에서 바늘처럼 귀를 낚아챈다. 그리하여 들리게 한다. 듣게 한다. 마치 수만 명의 관중이 만들어내는 환호성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치어리더의 에너지와 같다.

    트와이스의 음악은 ‘훅’하는 매력이 있다. 마치 치어리더의 에너지와 같다./트와이스 공식 페이스북
    트와이스의 가사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F(X)의 ‘일렉트릭 쇼크’처럼 서사에서 이탈하는 가사도 아닌데 그렇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트와이스가 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웃는 얼굴로 땀 흘리며 춤추고 있는 소녀들이 외치는 응원구호란, 불분명할 때 한 번 더 귀를 기울이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 비록 별 내용 아닌 이야기일지라도, 소년들은 그저 그 에너지에 힘을 얻고 설레하기 마련이니까. 고속철도 밖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풍경은 오히려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지 않나.

    라이브가 가능할까 싶을 만큼 잘 가꿔진, 소녀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아이돌 시대의 한 풍경을 건강한 땀내 음으로 적시고 있다. 4년이라는, 걸 그룹의 세계에서는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그들의 분홍 신은 벗겨지지 않았다.

    그들의 최근작 ‘What Is Love?’은 33만 장 이상이 팔렸다. 걸그룹의 단일 앨범 판매량으로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동명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는 ‘사랑과 영혼’, ‘라 붐’ ‘러브레터’ ‘라라랜드’ 등 유명 영화와 CF의 패러디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거다. 지금 9명의 소녀가 통과하고 있는 화양연화의 시간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그 이후, 그들에게 다가올 엔딩은 어떤 것일까. 그때의 트와이스는 그들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까. 여름이 오고 있다.

    ◆ 김작가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남들보다 좋아했다. 사회에 나와서 짧게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과 연관된 삶을 살더니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해 쓰는 게 업이 됐다. 추상적인 음악을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수성을 끄집어 내는 걸 지향한다. 저서로는 음악 애호가로서의 삶을 그린 <악행일지>가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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