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교회서 세계 최대 교회로… 가난한 서민과 함께한 60년

입력 2018.05.15 03:00

60주년 맞은 여의도순복음교회
뜨거운 성령운동 목회로 신도 급증… 年 350억원 구제예산으로 '큰 나눔'
"더 낮아지고 나누는 교회 될 것"

조용기 목사(왼쪽), 이영훈 목사
조용기 목사(왼쪽), 이영훈 목사
"정말 너무도 가난하고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던 시대였습니다. 저는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천막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있었지만 '세계 선교'의 꿈을 꾸었습니다. '안 된다' 생각하면 진짜로 안 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면 됩니다. 희망과 꿈을 잃으면 안 됩니다."(조용기 원로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 최대 교회이지만 '부자 교회'가 아닌 '서민 교회'입니다. 지금도 성도님들은 서민이 대부분입니다. 앞으로도 가장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서 섬기고 돕는 서민 교회로 남을 것입니다."(이영훈 담임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18일로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지난 8일 만난 조용기(82) 원로목사와 이영훈(64) 담임목사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 꿈과 희망을 주는 교회'를 다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58년 5월 18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 최자실 전도사(조용기 목사의 장모) 집 거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조용기 전도사, 최 전도사와 자녀 그리고 밭일을 하다 비를 피해 들어온 주부 등 5명이 사과 상자를 보자기로 덮은 강대상을 놓고 예배를 드렸다. 이어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지난 60년간 세계 개신교계가 주목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드롬'의 출발이었다.

당시 개신교계와는 달리 창립 초기부터 방언(方言:성령의 힘으로 말한다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과 신유(神癒: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를 강조한 조 목사의 '뜨거운 목회'는 신자 수 급증으로 이어졌다. 창립 후 3년 만에 서대문로터리에서 부흥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교회를 이전했고, 1973년 여의도로 교회를 옮겼다. 당시 여의도는 국회의사당과 시범아파트 외엔 허허벌판이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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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서울 대조동에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던 시절의 여의도순복음교회(오른쪽 큰 사진)와 현재의 교회 전경. 이영훈 담임목사는“천막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는 서민교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1970년대는 한국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던 시기. 순복음교회도 한국 사회의 성장과 함께 커 나갔다. 1973년 입당 예배 때 1만명이던 교인은 1979년 10만명, 1984년 40만명을 넘어섰고, 1992년엔 70만명을 넘어 1993년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교회로 등재된다.

최근 '한국기독교회사'를 펴낸 박용규 총신대 교수는 "197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에게 두 가지 롤모델이 있었다"며 '조용기 모델'과 '옥한흠 모델'을 꼽았다. 성령 운동을 강조하며 감성적으로 뜨거운 조용기 목사의 목회 스타일과 제자 훈련을 통해 이성적인 신자 교육에 나섰던 고(故) 옥한흠 목사의 스타일이 한국 교회의 굵직한 패러다임을 형성했다는 뜻이다.

뜨거운 성장기를 거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08년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2006년 11월 당회에서 장로 933명의 투표를 거쳐 이영훈 목사가 후임 담임목사로 선출됐다. 이후 교회는 제자 교회 20개를 독립해 재정과 인사를 독립시켰다. 현재 교인은 55만5000명이다.

대형 교회의 상징이 되었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큰 교회, 큰 나눔'을 실천하려 노력한다. 선교와 구제 사업에 쓰는 예산만 연간 350억원. 교회가 직접 나서기도 하고, 1999년 설립한 국제 구호 개발 NGO 굿피플을 통해서도 나눈다. 이영훈 목사는 "초심을 잃지 않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서민 교회, 더 낮아지고 나누는 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16~18일 기념행사를 갖는다. 18일에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약 7만명이 참가하는 기도대성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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