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10시간 對 3박 4일

조선일보
  • 이하원 논설위원
    입력 2018.05.15 03:15

    文대통령 취임 첫 訪日에 10시간 만에 서울 돌아와
    中은 나흘 일정에 삿포로까지… 反日 프레임 버려야 '꿈' 이룬다

    이하원 논설위원
    이하원 논설위원
    지난주 일본 열도에서 주목받은 외국 정치인은 중국 총리 리커창이었다. 리커창은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의(9일)를 계기로 8일부터 4일간 방일(訪日)했다. 한·일(韓日) 못지않게 중·일(中日) 관계가 긴장된 상태에서 이례적이다. 10일엔 내년에 퇴위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만났다. 리커창의 '중·일 관계의 정상적 궤도 복귀' 발언이 제목으로 뽑혀 나왔다. 11일엔 일 총리 아베와 함께 홋카이도의 삿포로에 갔다. 하늘색(리커창), 빨간색(아베) 넥타이를 맨 양국 총리가 도요타 공장을 나란히 시찰하는 장면은 일본 TV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리커창이 1985년 공청단 간부로 도쿄에서 홈스테이했던 사진도 33년 만에 일본 신문에 실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3국 회의에 참석했지만 단 하룻밤도 머물지 않았다. 취임 후 처음, 한국 대통령으로서 6년 반 만의 방일이라는 의미 속에서도 체류 시간은 10시간이 채 안 됐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저녁 뉴스에서 한·일 정상회담 기사를 접했을 때 문 대통령을 태운 '공군 1호기'는 이미 우리 영공에 진입한 후였다.

    똑같은 회의를 계기로 한·중 양국 정상이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10시간 대(對) 3박 4일' 성적표가 나왔다. 시진핑 1인 치하가 되면서 존재감이 없어진 리커창이 해외에서 의욕적으로 움직인 결과일 수 있다. 외교적 중요성 면에서 일본이 중국을 우선시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다른 나라의 사정을 이해해가면서 외교를 할 만큼 한가한 상태가 아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따지자면 중국보다는 우리가 훨씬 더 급하다. 무엇보다 방한(訪韓) 일본 관광객이 2012년 350만 명에서 계속 줄어 지난해 230만 명으로 떨어진 데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8일부터 이틀간 도일(渡日) 방안이 일각에서 제시됐지만 무시당한 것은 '남북 관계만 잘되면 된다'는 청와대 내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이달 초 세계 탁구 대회에서 일본과의 준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남북한 단일팀이 벼락치기로 결성된 것도 개운치 않다. 4·27 남북 정상회담 바람을 타고 대회 도중에 순식간에 단일팀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독자가 많은 일본의 한 신문이 사설, 사회면 기사, 칼럼으로 며칠에 걸쳐서 비판했다. "대회 시작 전에 단일팀이 결성됐다면 이해 가능하나 (일본과의) 시합 직전에 결성된 것은 공평성을 결여했다"고 했다. 올 초 평창올림픽 당시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때와 180도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한국이 북과 함께 일본을 겨냥했다고 지적받는 일은 피해야 했다.(이 경기에서 남북 단일팀은 일본에 0대3으로 졌다.)

    일부 단체가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세우려는 강제 징용 노동자상에 대해서도 현 정부는 여전히 일부 열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고 있다. 지난 1일 동상 설치를 막았던 정부는 문 대통령의 방일 전날 초저녁에 4개 부서 장관 명의의 담화문을 달랑 한 장 내놓았다. 관련 단체의 '대승적 결단'을 호소했지만, 장관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담화문을 낸 사실 자체를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북아에서 북이 비핵화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일본을 따돌린 채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식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 매체와의 취임 1주년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여정에서 일본의 적극적 지지와 협력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대선 후보 시절과 지난 1년간 활용했던 반일(反日) 프레임을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지금 북한과 김정은에게 하는 것처럼 일본에도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문 대통령의 '꿈'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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