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판 '마셜플랜' 필요하나 그 막대한 돈은 누가 내나

조선일보
입력 2018.05.15 03:20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3일 미 방송 인터뷰에서 "북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의 민간 투자가 허용될 것"이라고 했다.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북에 무역·투자를 개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폼페이오는 인프라·에너지(전력)망·농업 등 3가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북에 가장 절실한 분야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이 2차 대전 후 유럽 경제 부흥을 위해 실시했던 '마셜 플랜'과 같은 대규모 대북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이 실제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경제로 눈을 돌리게 되면 우리는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모두 도와야 한다.

문제는 천문학적 비용이다. 북 철도 개발에만 773억달러(약 83조원)가 소요될 것이라는 정부 추산(2014년)이 있다. 고속철을 깐다면 비용은 더 들어간다. 도로 개·보수 비용도 막대하다. 정부가 2005년 대북 송전(送電) 200만KW를 제안하면서 예상한 비용이 3조2000억원이다. 경수로 발전소 1기에 3조5000억원이 필요하다. 특히 북 전력망은 매우 낡아 누전율이 70%에 이른다. 북한 전역 전력망을 개수하는 비용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언급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민 세금으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볼턴도 "미 정부의 경제 원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면서 그 비용을 멕시코 정부에 내라고 한 사람이다. 주한미군조차 돈 문제로 본다. 이런 트럼프 특성 등을 감안할 때 '북한판 마셜플랜'에는 정작 미국 정부는 한 푼도 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폼페이오가 언급한 미국 민간 기업은 위험 부담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의 보증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국제금융기구가 얼마나 부담할지도 불분명하다. 결국은 1994년 제네바 북핵 합의 때처럼 한국이 비용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당시 북에 들어가는 경수로 발전소 비용의 70%를 우리 국민이 냈었다.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에 담긴 대북 지원 내용은 11년 전 기준으로도 16조원 넘는 돈이 필요했다. 이달 말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발표할 '신(新)북방정책' 로드맵에는 철도·항로 및 전력망·가스망 연결 사업 등이 망라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수십조~수백조원이 들어갈 사업이다. 북이 원하는 대북 사업도 과거처럼 의류·봉제가 아니라 첨단 산업이나 조선소 유치 등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대북 투자는 잘만 하면 남북이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너무나 열악한 북한의 인프라 건설도 통일을 대비해 도울 필요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북한의 정치적 리스크'나 '한국 내 정치적 왜곡' 없이 합리적으로 진행될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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