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갖고 찾으면 어려운 이웃 많아… 더 나누고 더 섬기겠습니다"

입력 2018.05.15 03:00

이영훈 담임목사

"대학생 시절 철거민촌 봉사하며 이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
앞으로도 희망 드리는 교회될 것"

이영훈 담임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교인 대부분이 서민들”이라며 “앞으로도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영훈 담임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교인 대부분이 서민들”이라며 “앞으로도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 장련성 객원기자
―창립 60주년 기념 표어가 '고난과 영광의 60년'입니다.

"돌아보면 여의도순복음교회 60년 역사는 고난의 시기가 영광의 시기였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영광의 순간은 짧습니다. 지도자가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은 긴장입니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영적(靈的)으로 긴장하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풍요로움은 영적인 긴장을 풀리게 만듭니다. 고난은 영광의 자양분입니다."

―서대문 교회 시절 주일학교부터 출석했습니다. 당시 교회 풍경은 어땠나요.

"저는 장로교회에 출석하다가 순복음교회로 왔습니다.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지요. 당시만 해도 장로교회는 예배 때 통성기도나 박수 같은 게 없었거든요. 4대째 교인 집안에서 자란 저는 성경 말씀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복음에 출석하면서 성경 속 예수님이 체험 속으로 걸어들어왔다고 할까요, 이성적 신앙에서 체험적 신앙으로 옮겨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목회자가 순복음교회 예배를 참관하셨는데 CCC 김준곤 목사님이 '조용기 목사의 기관포 앞에 모두 무너졌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언제 목회자의 꿈을 갖게 됐습니까.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스키너 목사님이 부흥회를 여셨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설교하다 우시는 겁니다. 저는 설교하다 우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통역하던 조용기 목사님도 우시고, 예배당이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그런 감동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런 사랑을 본받을 수 있을까' 하며 목회자의 꿈을 갖게 됐습니다."

―제자로서, 후임 담임목사로서 조용기 목사님의 어떤 점을 본받고 싶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성령 충만의 역사,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은 긍정의 메시지입니다. 1960~70년대 암울한 시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제자교육을 강조하는 교회에선 가르침을 통해 양육합니다. '해라, 말라' 지적을 하게 되지요. 이런 분위기가 유교적 전통과 맞물리며 권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반면 조용기 목사님의 메시지는 자유, 해방, 치유에 집중됩니다. 서민들에게 어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회적인 '잘 살아보세' 분위기와도 맞았지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 최대 교회'라고 평가되지만 '부자 교회'보다는 '서민 교회' 인상이 강합니다.

"그렇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시작부터 대조동에 천막 치고 가난한 이들을 전도했고, 지금도 서민들이 대다수입니다. 1인당 헌금 액수로 계산하면 강남 대형교회의 4분의 1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순수하고 열정적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앞으로도 영원히 서민교회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망에 처한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드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인들과 어떻게 소통하십니까.

"교구의 리더들과 대화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합니다. 작년부터는 교인 중 가장 어렵게 사는 분들을 심방하고 있습니다. 영등포의 무허가집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인데 하루 1만원 벌기도 힘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최근 복지사각지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웬만한 복지는 정부가 다 하고 있지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사각지대가 여전히 많습니다. 호적에 부모가 있어서, 혹은 경제활동 연령의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최근엔 자녀가 둘 이상이면 군대에 안 가도 되는 점을 악용해 청년들이 혼인신고로 군대를 면제받은 뒤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사라지는 경우도 생기고 있답니다. 작년부터 만 18세가 넘어 보육원을 나오게 된 청년들이 취업할 때까지 주거를 돕는 장학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미혼모와 그 자녀를 위한 시설 등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1976년 대학생 때 1주일 정도 난지도 철거민촌 봉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망원동 버스 종점까지만 해도 양옥집이 즐비한데 그 너머 난지도엔 분뇨처리장 옆에 천막 치고 철거민들이 살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거기서 처음 호롱불을 봤습니다. 그때 '앞으로 내가 무엇이 되더라도 이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안산희망나눔프로젝트'는 12차례 진행했습니다. '한두 번 하다 그만둘 것'이란 예상을 깼습니다.

"약속한 건 지켜야죠. 세월호 사고 후 안산을 찾았을 때 너무도 분위기가 침체돼 '세월호 올라올(인양될) 때까지 오겠다'고 약속한 걸 지켰습니다. 올해도 추수감사절에 다시 교인들과 찾아갈 생각입니다. 지난번 경주 지진 때에도 교인들과 함께 경주 전통시장을 찾았습니다. 큰 교회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은 꾸준히 찾아서 할 생각입니다."

―사회적으로 청년층은 취업, 결혼, 출산 등에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기부문화가 확산돼야 합니다. 부(富)의 편중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업이 수출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하지만 서민들은 전혀 누리지 못합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은혜를 쌓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쓰는 사람'이지 '쌓아 놓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국에선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부자들이 기부 문화를 이끌고 있지 않습니까. 다가올 통일 시대, 우리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 나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한국 개신교가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교권(敎權) 다툼과 분열, 물량주의 등을 반성해야 합니다. 앞으론 교파 장벽을 넘어 하나 되는 하모니를 이뤄야 합니다. 2년 후면 3·1운동 100주년입니다. 당시엔 개신교 교인 수도 얼마 안 됐지만 하나로 뭉쳐 3·1운동을 이끌었습니다. 3·1운동 100주년 때에는 연합기관도 하나로 뭉쳐 나라와 민족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성장을 넘어 성숙해야 합니다. 방법은 낮아짐, 섬김, 희생, 나눔입니다. 교회도,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성공'은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앞으로의 성공은 더 낮아지고 나누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교회가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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