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120바퀴 돌며 복음 전해… 세계 선교의 꿈 포기하지 않았죠"

입력 2018.05.15 03:00

조용기 원로목사

"평양에 짓다 만 '조용기 심장병원'
北서 8년만에 재추진 요청 연락… 은퇴했으니 내 이름 빼달라 했죠"

조용기 원로목사는 “우리는 지혜로운 민족”이라며 “고난을 각오하되 비관하지 말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굳게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용기 원로목사는 “우리는 지혜로운 민족”이라며 “고난을 각오하되 비관하지 말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굳게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장련성 객원기자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여든 노인이 지내는 게 다 그렇지요. 파킨슨병 때문에 거동이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옷 입고 세수하고 성경 읽고 기도드립니다. 청년 시절부터 해온 일과이지요. 새벽 기도와 관련해선 에피소드가 있어요. 서대문 시절, 한 번은 새벽기도에 갔는데 성도들이 박수 치며 웃어요. 그날따라 늦잠을 잤는데, 강대상에 잠옷을 입고 섰던 겁니다. 저도 성도님들도 열정이 대단하던 시절이지요."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는 감회가 어떠신지요.

"남다른 감정은 없습니다. 교회 개척하고 전 세계 복음을 전할 당시엔 굉장한 감정이 있었지만 이 모두가 운명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감정은 없습니다."

―개척 당시 풍경은 어땠습니까?

"처음 교회를 개척한 서울 불광동 일대는 먹고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경상도, 전라도에서 못 살고 서울로 올라온 분들이 모여 살았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산다'고 표현하기에 민망할 수준이었습니다. 희망도 없었죠. 그래서 저는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소망을 잃고 살 수는 없잖아요."

―전 세계를 누비며 전도 집회를 열었습니다.

"지구를 120바퀴쯤 돌았습니다. 저는 천막 시절부터 세계 선교를 꿈꿨습니다. '한국이 자동차, 비행기는 못 만들어도 복음과 예수를 전하는 일에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 할 수 있다'고 강한 믿음을 가졌어요. 미국인 선교사에게 이야기를 하니 비웃었습니다. '엉터리 같은 생각 말고, 꿈을 낮춰라'고 해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꿈을 가지고 결국 이뤘습니다."

―세계 선교 집회 중 기억 나는 장면이 있습니까.

"브라질 상파울루 집회입니다. 당시 비행장에서 집회를 했는데 100만명이 모였습니다. 인파를 뚫고 강단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헬기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과테말라 집회에선 대통령이 직접 차를 몰고 공항에 마중을 나와서 '오늘은 대통령이 아니라 교인으로서 모시러 왔다'고 한 적도 있지요. 스웨덴에서 집회할 때는 노골적으로 무시당했어요. 자기들보다 훨씬 못 사는 나라 목사가 설교한다니 그랬겠지요. 그런데 첫날 100명으로 시작해 사흘째는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사람까지 3만명이 모였어요. 세계 선교 다니면서 느낀 것은 가난한 우리에게만 소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잘사는 나라들도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망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제 집회에 세계인들이 모여든 이유이지요."

―얼마 전 별세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스스로를 비교하신다면?

"견주지 못하지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도와주고 응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돈도 많았고요. 저는 돈도 없고, 못 사는 나라 출신이잖아요. 제 집회에는 그 나라에서도 돈 없는 사람들만 모였습니다. 그래도 전체를 계산해보면 제 집회에 모인 사람 수가 그레이엄 목사님보다 더 많지 않을까요?(웃음)"

―2007년 평양에 '조용기 심장전문병원'을 착공했습니다. 2010년 공사가 중단된 상태인데요.

"동남아에 다니면서 심장병 어린이들을 국내에 데려와 수술을 시켜줬어요. 지금까지 한 5000명 됩니다. 사연을 들으면 눈물이 나요. 그러다 보니 다른 민족도 돕는데 왜 우리 민족을 돕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더니 어느 날 북(北)에서 '말만 하지 말고 병원 지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당시 전세기를 타고 장로님들과 평양 공항에 내렸는데 시내까지 가는 동안 에스코트부터 대단해요. 병원 지을 터도 보고 눈물로 주일예배 드리고 돌아와 바로 계획에 착수했지요. 정치적으로 남북이 좋을 땐 자재도 들어가고 원활했지만 어려워지면 멈추다가 지금은 8년째 멈췄습니다. 최근에 북측이 이영훈 목사를 통해 다시 지어줬으면 한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저는 병원 이름에서 제 이름을 빼달라고 했습니다. 착공 당시엔 제가 책임지고 일할 때였고, 지금은 은퇴했으니까요. 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미·북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습니다. 남북 관계는 어떻게 보십니까.

"신중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북한이 지금 이렇게 나오는 것은 뭔가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이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난 60년 동안 가장 기뻤던 때는 언제입니까.

"여의도 성전에 입당했을 때입니다. 당시 오일쇼크로 경기가 얼어붙고 건설비가 모자라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공사장에서 철근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곤 했지요. 어느 날 모래밭에서 예배드리는데 한 할머니가 제게 '10분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세요. 봉지에서 뭘 꺼내는데 보니까 숟가락, 젓가락이에요. 할머니는 '내 유일한 재산이자, 최고의 보물이다. 조 목사 설교 듣고 은혜받고 구원받았다. 공사 중단되면서 조 목사가 죽어가고 있다. 죽어도 살아도 같이 하자. 우리 모두 일생일대의 것을 내놓자'고 하셨지요. 그 이후로 헌금뿐 아니라 교인이 갑자기 늘어서 설계를 계속 바꿨어요. 처음엔 3000명 규모로 설계한 것을 5000명, 7000명, 1만명까지 늘렸어요. 그렇게 설계를 계속 바꾸다 보니 예배당이 아름답지는 않아요."

―목사님은 평생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엔 희망 대신 절망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정치의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돼야 합니다. 좌파건 우파건 편 가르지 말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사랑을 베풀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에겐 어떤 희망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꿈을 잃지 마십시오. 긍정적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면 우리 민족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멋진 백성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안 된다'는 말에 귀 기울이면 실제로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저 위에 계시는데 안 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고생은 반드시 따라옵니다. 고난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나가면 미래는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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