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와 함께한 고난과 영광의 세월

입력 2018.05.15 03:00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

1958년 천막교회로 시작…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희망 설교
聖徒 55만5000명 교회로 성장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0주년
성도(聖徒) 수 55만5000명, 구제·선교비 연 350억원, 개척한 교회 496개, 해외 파송 선교사 62개국 697명, 출산장려금 28억6700만원, 심장병 수술환자 5000명 지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오늘을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5월 18일로 창립 60주년을 맞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 현대사의 발전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가 창립하던 1958년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80달러. 극빈국(極貧國)이었다. 전쟁의 상흔도 남아 있었다. 조용기 원로목사는 "1958년 당시 서울 불광동 일대는 '산다'고 말하기에 민망한 정도로 가난했다"고 말했다.

창립 후 순복음교회가 첫걸음을 내딛던 19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한국 경제가 기지개를 켜던 시점이었다. 전국의 농촌에서 서울로 시민들이 몰려오는 이농(離農)과 도시화가 시작됐다. 1970년대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이 벌어졌고, 전국 각지에 공단(工團)이 조성되면서 수출 드라이브가 걸리며 '한강의 기적'이 시작됐다. 1977년엔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이 시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어렵게 뿌리를 내리는 이들에게 조용기 목사는 '희망'을 설교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잘살아보세'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뭉칠 때 조 목사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설교했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등 기업인들이 세계 시장을 누빌 때 조용기 목사는 지구 120바퀴 거리를 날아 세계 선교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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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탑 사이로 보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의 모습(큰 사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16~18일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왼쪽 작은 사진은 1958년 천막 교회 모습이며, 오른쪽은 현재 교회 전경. /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1960년 244만명이던 서울 인구는 1970년 543만명으로 두 배 이상 껑충 뛰었고, 1980년 836만을 넘어 1990년엔 1061만명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 기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도 수는 서울 인구 증가보다 더 가파른 상승 그래프를 그렸다.

한국 사회 성장의 영광과 동행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고난 극복 과정도 함께했다. 1997년 IMF구제금융 사태로 실업자·노숙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금 모으기 운동에 앞장섰고, 1999년엔 국내외 구제 활동을 위한 NGO 굿피플을 창립했다. 북한 지원에도 나서 2007년 평양에 심장전문병원을 착공했다.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난 이후엔 성도들이 경기 안산의 전통시장을 찾아 물건을 사주는 '희망나눔프로젝트'를 12차례에 걸쳐 펼쳤다.

이영훈 담임목사는 60주년을 맞아 "이제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더 낮아지고 나누고 섬기고 희생하는 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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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숫자로 본 여의도순복음교회
그래픽=김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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