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장애인 돌보는데 4시간마다 쉬라니… 현실과 동떨어진 활동보조인 휴게시간 보장

조선일보
  • 김재곤 기자
    입력 2018.05.14 03:00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7월부터 적용, 1회 4시간 이상 보조받는 장애인 65%
    업무 특성상 휴식시간 보장 어려워… 근무 거짓 기록 등 편법 조장 지적

    대전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한모(50)씨는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3시간씩 김모(45)씨를 돌본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인 김씨는 홀로 거동할 수 없다. 함께 생활한 지 벌써 9년째로, 가족이 없는 김씨에게 한씨는 가족 이상의 존재다. 하지만 최근 한씨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내년부터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데다, 오는 7월부터는 업무 중간에 반드시 휴식시간을 가져야 해 결국 일하는 시간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다. 한씨는 "나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 때문에 답답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한씨 같은 활동보조인들이 속한 사회복지서비스업도 근로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특례 업종에서 제외됐다.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7월부터는 이들도 최대 주 52시간의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받는다. 한씨처럼 하루 13시간씩 주 65시간씩 일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1년의 유예기간을 둔 근로시간 제한도 문제지만, 오는 7월부터 적용될 휴게시간 보장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말한다. 활동보조인들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4시간마다 최소 30분씩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활동보조 업무의 특성상 자신이 돌보던 장애인을 놔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한씨는 "4시간마다 휴식을 취하려면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을 방치해 놔야 한단 말이냐"고 했다.

    결국 휴게시간 보장을 위해선 추가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 한씨의 경우 지금은 하루 13시간씩 혼자 김씨를 돌보고 있지만 앞으로는 최소 2명 이상의 활동보조인이 4시간씩 나눠서 돌봐야 하는 것이다. 휴식 보장이 필요한, 한 번에 4시간 이상 활동보조를 받는 장애인의 비율은 65%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장하려면 현재 6만3000명인 활동보조인 인력이 최소한 15만명은 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자립생활센터 관계자는 "현재 정부 지원으로는 (활동보조인들에게) 최저임금 맞춰주기도 어려워 활동보조기관들이 문을 닫는 상황인데, 여건 개선 없이 추가 인력 확보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안진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대표는 "현 정부가 장애인 활동 지원 등을 공약해놓고 정작 현장에서 구조적인 편법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추가 인력이 투입되지 않을 경우 활동보조인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불법 아니면 편법뿐이다. 즉, 휴게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근무시간을 체크하는 단말기상에 쉬지 않고도 쉬었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장 마땅한 해결책은 없지만 조만간 시범사업 등을 통해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청년 일자리 사업 일환으로 활동보조인이 휴식을 취할 동안 청년을 투입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중증 장애인들 입장에선 낯선 사람이 바꿔가며 오는 것은 반인권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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