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축제 금주령"에 대학생들 '소주키핑' '맥주구매대행' 편법대응

입력 2018.05.12 11:00

금주령 떨어진 대학축제 ‘편법 난무’
소주 구매대행, 맥주 키핑, 술 무료…
서울대 주점 ‘아침햇살’ 시켜보니 막걸리
“교육부 금주령 덕에, 더 재미있게 마신다.”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축제현장에 “술 사다 드립니다”는 ‘메뉴판’이 등장했다. 올해부터 교육부가 “학생들이 주점을 운영하는 것은 주세법 위반”이라며 대학가에 ‘금주령(禁酒令)’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학 축제의 주점 운영에 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술 없는 대학축제가 가능할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지난 9~10일 이틀간 서울·경기지역 대학축제 세 곳을 찾았다.

세종대학교 축제 주점에서는 메뉴판에 “술 사다 드립니다”라는 글귀가 등장했다. /고성민 기자
◇금주령 떨어진 대학축제 ‘편법 난무’
세종대에서는 ‘주류 구매대행’ 수법이 등장했다. 방식은 이렇다. 안주를 주문한 뒤 주점 측에 “술 사달라”고 요청만 하면 된다. 주점 측에 대기하던 ‘배달원’이 편의점으로 달려가 주문한 술 심부름을 해준다. 기자가 술을 주문해보니 테이블에 맥주 2병이 오르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학생들이 직접 술을 판매하지 않고 배달만 한 것이라 ‘주세법 위반’은 아니다.

지난 9일 찾은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 축제에서는 ‘키핑 시스템’을 도입한 주점이 눈에 띄었다. 손님들이 원하는 만큼 술을 사오면, 주점 측에서 이를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보관해주는 것이다. 이후 안주와 함께 주문하면 아이스박스에서 술을 꺼내 온다. 처음에 술을 사오는 점만 빼면 보통 술집에서처럼 주문이 가능하다. 10병의 소주·맥주를 사온 뒤 중간중간 축제 공연에 다녀오면서, 원하는 때 주문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맥주캔 4개인데, 2캔은 지금, 2캔은 이따 주문할 테니 ‘키핑’해주세요.” 기자도 이날 맥주 2개를 키핑해서 마셨다.

술을 무료로 주는 곳도 있었다. 주류 판매를 하지 않으므로 ‘주세법 위반’이 아닌 것이다. 같은 학교 동아리 주점은 메뉴판에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소주 한 병 길에 버림”이라고 적혀 있다. 소주를 길에 버릴 테니, 주워서 마시라는 뜻이다. 기자는 가위바위보에서 졌지만, “술 좀 달라”고 부탁하자 주점 측에서 소주 한 병을 길에 버려 줬다.

서울대에서는 ‘암호’를 썼다. 아침햇살 3000원, 물 3000원, 사과향 3000원, 레모네이드 4000원… 10일 찾은 서울대 학과주점의 메뉴판에는 음료명(名)이 가득했다. 아침햇살을 주문했다. 아침햇살 음료와 색이 비슷한 막걸리가 나왔다. 물은 소주, 사과향은 과일소주, 레모네이드는 레몬소주 칵테일을 뜻하는 암호였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대학교 교내에서 학생들이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음료’를 마시고 있다. /고성민 기자
대낮인데도 주점 주변에서는 20여명의 학생들이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안주로 ‘아침햇살’을 마시고 있었다. ‘레모네이드’로 건배를 하기도 했다. 이 학교 새내기 김모(19)씨는 “솔직히 교육부 금주령 덕분에, 대학 축제 때 더 재미있게 술을 마시게 됐다”고 말했다.

◇축제 직전 내려온 ‘금주령’ 공문… “적자 때문에 술 판다”
현행 주세법은 주류 판매업 면허가 없는 학생이 주류를 판매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인천 지역 한 대학 학생회는 축제 기간에 주류회사에서 구입한 술을 팔았다가, 주류판매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국세청 조사를 받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위법인데도 학생들이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알릴 필요가 있었다”며 “이번 조치로 대학 음주 문화도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육부 탁상공론’에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 공문이 축제 직전에 급하게 내려왔다는 것이다. 세종대 주점을 운영하던 권모(20)씨는 “이미 음식 재료비, 천막 대여비로 300만원을 지출했는데, 축제를 코앞에 두고 ‘술 팔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왔다”며 “적자를 보지 않으려면 ‘주류 구매대행’ 같은 방법이라도 써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술을 무료로 제공하는 경희대 동아리 주점 측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주점 운영진 정모(19)씨 얘기다. “술은 환불 되지만 식재료는 환불이 안 되잖아요. 주점 영업을 취소한 옆 동아리는 이미 구매한 식재료를 선배들이 사비(私費)로 되사는 식으로 비용을 메우고 있습니다.”

술 마시는 건 똑같고, 금주령으로 마음만 불편해졌다는 불평도 있었다. 세종대 학생 장모(22)씨는 “어차피 다들 술을 사와서 교내에서 마시고 있다”면서 “결국 술 마시는 것은 똑같은데 학교 주변 편의점·마트만 돈 버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주령을 계기로 대학가 음주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성균관대 학생 한모(21)씨는 “술 마시고 서로 싸우고 토하고 쓰레기를 마구 내다 버리는 게 좋은 대학 문화인지 모르겠다”고 했고, 고려대 학생 최모(28)씨도 “위법인 줄 알면서도 관행적으로 술을 팔아온 문화가 이번 기회에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축제 주점에서는 ‘주류 키핑’ 시스템이 도입됐다.(왼쪽 사진) 서울대학교 축제 주점에서는 ‘아침햇살’이라는 암호로 막걸리를 판매했다(오른쪽 사진). /최영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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