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칸 박사' 막아야 진짜 비핵화

조선일보
  • 이용수 기자
    입력 2018.05.11 03:00

    [싱가포르 美北정상회담]

    1만명 北 핵기술자 통제가 영구적 비핵화 핵심

    '핵확산 주범' 파키스탄 칸 박사, 이란·北·리비아 등에 기술 전수
    北이 핵무기·시설 폐기하더라도 '제2의 칸' 안 나온다는 보장 없어
    "美, 북 핵기술자 해외이주 요구" 아사히 신문 보도 사실일 수도

    미국이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교섭에서 북한에 핵 기술자의 해외 이주와 핵 관련 데이터의 삭제를 요구했다고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10일 보도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와 핵시설 등 하드웨어뿐 아니라 핵 기술 인력과 핵실험 데이터 등 소프트웨어도 비핵화 대상으로 삼겠다는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보도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지만 정부 소식통은 "미국이 1만명 규모로 알려진 북한의 핵 기술 인력 처리 방안을 고민 중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물질·무기·시설을 폐기하더라도 핵 과학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개발을 재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인력이 제3국에 매수돼 핵 기술을 이전·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2일 취임사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영구적(permanent)'이란 용어를 새로 추가한 'PVID'를 언급한 것도 이를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 핵 기술자들 처리 문제가 영구적 비핵화의 핵심"이라고 했다.

    AQ칸 박사의 핵확산 사례
    핵 기술자를 통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83) 박사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이란, 1990년대 북한과 리비아에 핵폭탄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기술을 전수해줬다. 2001년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핵폭탄 제조를 도울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외교 소식통은 "오늘날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국제 핵확산 범죄의 주범이 칸 박사"라며 "북한에서 제2, 제3의 칸 박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했다. 칸 박사는 핵확산 혐의를 시인하고 2004년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2009년 법원 결정으로 가택연금은 해제됐으나 여전히 해외여행을 제한받고 있다.

    북한 핵개발 인력의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선 "핵심 고급 인력만 200여 명, 전문 인력 3000여 명, 기술 인력 6000명 등 약 1만명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의 처리 문제와 관련, 핵 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옛 소련 국가들의 비핵화 과정에 도입했던 '넌-루가 법'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넌-루가 법'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에 남은 핵·화학무기와 운반 체계 등을 처리하기 위해 기술과 자금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았다. 1991년 이 법을 공동 발의한 샘 넌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의 이름을 땄다. 특히 핵·미사일 관련 인력들에 대한 재훈련과 재취업, 해외 이주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5만8000명이 다른 직업을 찾았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본지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핵 과학자들은 영변 등 고립된 지역에 모여 산다"며 "'넌-루가 법'을 참고해 이들을 대상으로 전직(轉職) 훈련과 직장 알선 등을 통해 다른 분야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영구적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북한 핵개발 인력들에 대해 '넌-루가 법' 이상의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원래 '완전한 핵폐기'(CVID)의 'I'에 해당하는 '불가역적'(irreversible)이 핵개발 인력에 대한 조치를 포함한다"며 "미국이 '영구적'이란 개념을 도입한 것은 핵 과학자들의 전직·재취업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했다. 미국이 북한 핵 기술 인력들의 해외 이주를 요구했다는 아사히의 보도가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북한이 (미국의) 데이터 폐기 요구에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기술자 이주에는 난색을 표했다"고 전했다.

    외교가에선 "미국이 북한 핵 과학자들의 산실인 국방대학교, 김일성대와 김책공대의 핵물리공학부, 영변 핵물리대학 등에 대해 관련 학과 폐지 등을 요구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북한의 핵 능력을 완전히 거세하라는 요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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