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다 죽어라' 하던 禪僧… "평상에 몸을 묶고 수행하셨죠"

입력 2018.05.11 03:00

혜암 스님 탄생 100주년 앞두고 출가자 등 25명 '스승 혜암' 펴내

만약 부모가 이런 분이라면 자식은 무척 힘들 것 같다. 평생 입에 달고 산 말이 "공부하다 죽어라"였으니까.

혜암 스님은 참선하는 틈틈이 농사도 지었다.
혜암 스님은 참선하는 틈틈이 농사도 지었다. 해인사 원당암 경내에서 호미를 들고 있는 모습. /혜암선사문화진흥회
조계종 종정을 지낸 혜암(1920~2002) 스님이 그랬다.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출가자와 재가 신자 등 25명이 혜암 스님의 삶과 수행을 증언한 책 '스승 혜암'(김영사)이 출간됐다. 전남 장성 출신인 스님은 1946년 해인사로 출가해 이듬해에는 한국 현대불교의 물줄기를 바꾼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다. 평생을 선승(禪僧)으로 살았고, 젊은 시절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一種食), 누워서 잠자지 않았다(長坐不臥).

지인들이 전하는 일화는 '공부(수행)' 또 '공부'다. 석종사 혜국 스님은 1960년대 말 잠을 자지 않고 참선하는 용맹정진을 위해 해인사를 찾았을 때 반기던 혜암 스님의 모습을 기억한다. "용맹정진하다가 죽는다면 그보다 수지맞는 장사는 없어. 정진하다 죽을 수만 있거든 죽어버려. 내가 화장해 줄 테니까."

그는 찾아온 이들에겐 최소 1~2시간, 길면 밤새 공부하는 법을 간절히 일러줬다.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은 혜암 스님이 무당에게 법문한 일화를 소개했다. 태백산 각화사에서 혜암 스님과 수행하던 중 하루는 태백산 등산을 했다. 정상에 오르니 무당들이 굿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혜암 스님은 무당의 목탁을 들고 반야심경을 독송한 뒤 법문을 시작했다. 이윽고 법문이 끝나자 무당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큰절을 올렸다.

강진 백련사 여연 스님은 1978년 겨울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수행했던 일을 잊지 못한다. 5명이 함께 수행했는데 보름쯤 지나자 혜암 스님이 오후불식(午後不食)을 제안했다. 며칠 지나자 이번엔 단식정진을 제안했다. 1주일 지날 무렵 한 명이 인근 비구니 암자에서 고구마를 훔쳐 먹고 창자가 꼬였다. 그 바람에 단식은 1주일 연장됐고, 2주가 지나자 이번엔 "21일을 채우자"고 했다. 본의 아니게 3주간 단식하며 용맹정진했던 여연 스님은 "그때 공부의 맛을 봤다"고 한다. 여연 스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차(茶) 전문가. 매년 처음 재배한 차를 은사에게 드릴 때마다 "차 마실 시간에 공부하라"는 타박을 들었다고 한다.

70대 중반 고령의 나이에도 해인사 선방(禪房)에 평상을 놓고 젊은 선승들과 함께 참선하던 혜암 스님이 한번은 평상에서 떨어졌다. 주변에선 깜짝 놀랐으나 혜암 스님은 "평상에 묶어달라" 하곤 1주일 용맹정진을 마쳤다. 후배 뒷바라지엔 아낌이 없었다. 선승들이 두부, 국수 혹은 빵이 먹고 싶다면 즉시 마을로 달려가 사다줄 정도로 수행자를 아꼈다. 입적하기 전 축서사 무여 스님이 "아쉬운 점이 없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공부를 하려고 나름대로 애는 썼는데 짬지게 하지는 못한 것 같아"였다.

혜암 스님이 살던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 앞엔 높이 4.5m짜리 죽비 모양 비석이 서 있다. 여기 새겨진 스님의 육필 역시 '공부하다 죽어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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