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 지금 경찰은 수사 종결권 가질 자격 없다

입력 2018.05.11 03:13

정권 눈치보는 '드루킹' 수사, 지각 압수수색에 지휘부 혼선… 경찰 수준 적나라하게 드러나
이 마당에 종결권 주는 건 改惡

최원규 사회부 차장
최원규 사회부 차장
작년 말 만난 전직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수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솔직히 지금 경찰은 독자 수사를 할 능력이 아직 안 돼요. 무엇보다 수사 지휘를 해야 할 지휘부의 능력이 떨어집니다. 정권 눈치 보는 것도 검찰보다 더합니다." 경찰을 무척 아끼는 그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경찰의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를 보면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수사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수사에 착수한 지 43일이 지난 3월 21일, 댓글 조작 아지트였던 출판사를 압수 수색했다. 증거 빼돌리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드루킹' 김동원씨가 체포된 지 44일째인 지난 4일 민주당 김경수 의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의원 휴대전화도 압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고는 "관련 없다"는 김 의원 진술 내용을 중계방송하듯 공개했다. 경찰의 '패'를 다 보여주고 증거 인멸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휘부는 더 한심했다. 수사 책임자인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지난달 16일 기자 간담회에서 김 의원이 댓글 공작과 별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얼마 안 돼 김 의원이 드루킹에게 "홍보해 달라"며 메신저로 기사 인터넷 주소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이 청장은 "(수사)계장이 잘못 보고하는 바람에…"라고 했다.

이 사건 핵심은 김 의원이 작년 대선을 전후해 드루킹 일당과 어떤 관계였느냐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수사 책임자가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권 눈치를 봤거나 아니면 경찰 수사 지휘 체계가 엉망이란 걸 자백한 셈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면 이철성 경찰청장이 나서 "특별수사본부 차리겠다. 경찰 명예를 걸고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할 줄 알았다. 그의 임기는 오는 6월 30일로 끝난다. 주저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 청장이) 경솔했다고 생각한다"고 한 게 고작이다. 그걸 본 한 경찰관은 "참담하다"고 했다.

정부가 이런 경찰에 자체 판단으로 무혐의 처분 등을 할 수 있는 수사 종결권을 주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정권의 충견(忠犬)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검찰이라고 나을 게 없다. 권력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한 대가로 수사권, 기소권, 영장 청구권 등 무소불위 권한을 누려온 게 사실이다. 검찰 권한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사 종결권을 경찰에 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실상 기소권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만약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진 상태에서 드루킹 사건을 수사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경찰이 수사한 사건은 기록을 검찰에 다 보내 기소·불기소 여부를 판단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 판단이 뒤집히기도 한다. 경찰 권한의 오·남용을 막는 견제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경찰이 종결권을 가지면 무혐의로 판단한 사건 기록은 검찰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 경찰 수사에 문제가 있어도 검찰로선 알 도리가 없다. 드루킹 사건에서도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김경수 의원은 무혐의'라고 조용히 종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처럼 언론을 통해 김 의원 관련 사실이 보도되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검경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권한 배분이 아니라 이들을 어떻게 권력과 절연(絶緣)시키느냐에 있다. 그게 당장 어려우면 서로 견제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사 종결권을 경찰에 줘 그 장치마저 없애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改惡)이다. 그러면 경찰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것이다. 지금 경찰은 그런 권한을 가질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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