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피부과 돌아보니...15곳 모두가 "프로포폴은 못 놔준다"

입력 2018.05.10 10:19

기자가 강남일대 피부과 15군데 돌아보니
모두가 “피부과 시술에 프로포폴은 안 된다” 답변
하루에 20명 프로포폴 놔 준 ‘수상한’ M피부과
“중독자들 사이에서 소문난 병원인지 조사해야” 지적

“저희는 레이저 시술에 프로포폴 안 써요. 따끔거리는 정도인데 왜 환자를 재웁니까.”
서울 강남의 W피부과 상담실장이 손사래를 쳤다. 환자로 가장한 기자가 “그래도 수면 마취를 해 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언성이 높아졌다. “어제 뉴스 못 보셨어요? 그러다가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요.”

같은 방식으로 9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서울 강남 일대 피부과 15군데를 돌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레이저 쓰는 시술에 수면 마취제 프로포폴을 놔줄 수 없다는 것이다.

9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서울 강남 일대 피부과 15군데를 돌며 가벼운 피부과 시술에 “프로포폴 주사를 놔달라”고 해봤다. 사진 속 강남 I피부과는 “가벼운 피부과 시술에는 절대 프로포폴 주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권유정 인턴기자
◇강남 피부과·성형외과 15곳 돌아보니 ”프로포폴 왜 놓나요?”
기자가 직접 토닝(Toning·피부톤 개선) 시술, 리프팅(Lifting·주름 개선) , 홍조, 흉터 시술 상담을 받는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제가 통증에 민감해서 프로포폴로 수면 마취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상담을 받은 15곳 피부과는 △토닝 시술 등은 치료 과정이 1~5분 이내로 짧을뿐더러, 솜털이 타는 듯한 따끔한 정도의 통증만 있기 때문에 마취가 필요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상담을 받은 강남역 L피부과 상담실장의 말이다. “토닝 같은 미백 레이저는 아프지가 않아요. 통증이 없는데 수면 마취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예요. 아무리 예민한 사람이라도 깜짝깜짝 놀라는 정도인데. 고객님, 프로포폴이라니....”

“통증 걱정이 많이 되시면 마취 크림을 발라드릴게요”라고 권하는 곳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프로포폴 투약은 안 된다”고 했다. 강남역 E피부과 전문의는 “토닝 시술은 무(無)통증에 가까워서, 마취크림을 바르나 안 바르나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홍조·흉터치료도 비슷한 답이 나왔다. 아무리 예민해도 마취크림 정도라는 것이다.

통증이 상대적으로 심한 리프팅은 어떨까. 피부층(層) 도달 정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한 리프팅 시술의 경우 대부분 마취크림을 쓴다. 초음파를 피부 깊숙이 쏘는 ‘울쎄라 리프팅’은 15곳 가운데 3곳 정도가 “프로포폴을 정 원하면 써주겠다”고 답했다. ‘울쎄라’는 리프팅 시술 가운데 통증 정도가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역 J피부과 의사는 “울쎄라는 통증을 못 참는 사람이 있어 원하면 (프로포폴) 주사를 놔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머지 12곳은 ‘울쎄라’ 시술에도 수면 마취는 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N피부과는 “울쎄라는 좀 아프지만 크림만 발라도 충분하다. 수면 마취는 일절 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독성 강한 우유주사, ‘집단 패혈증’ M피부과가 수상하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M피부과 의원에서 토닝·리프팅 등의 시술을 받은 환자 20명(여자 19명·남자 1명)이 집단 패혈증(세균에 감염돼 전신에 염증반응이 일어나는 병) 증세를 보였다. 해당 피부과는 정오부터 3시 30분쯤까지 20명에게 시술 전 프로포폴을 주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냉장고가 고장 난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 프로포폴을 보관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주사제인 프로포폴을 상온에서 60시간 넘게 방치해 오염이 생긴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상담’한 병원 가운데 일부는 ‘집단 패혈증’ 사건을 먼저 언급하기도 했다. “피부과에서 프로포폴 주사를 남용하니까 그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한 병원 관계자들은 “피부과가 하루에 20명씩이나 프로포폴을 주사한다는 것이 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두 수면 마취까지 필요 없는 시술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잠재우는 프로포폴은 마약류로 분류된 향정신성의약품이다. 불투명한 흰색을 띠는 액체로 일명 ‘우유주사’라고 불린다. 수술 전 수면 마취를 위해 사용되지만, 호흡·심장기능이 저하돼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기도 한다. 마이클 잭슨은 주치의로부터 치사량에 가까운 프로포폴을 맞고 사망했다.

문제는 중독성이다. 수면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맞으면 푹 잔 것처럼 개운하다. 이 때문에 치료 목적으로 프로포폴을 맞다가도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관계자 얘기다. 2012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피부과 여의사 김모(41)씨의 시신에서는 치사량이 넘는 프로포폴이 검출됐다. “숨진 피부과 의사가 피로를 느낄 때면 가끔 자기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가져와 투약했다”는 주변 진술이 나왔다.

’집단 패혈증’ 사태가 벌어진 서울 강남구 M피부과 문은 지난 8일 오전부터 굳게 닫혀있었다. /이다비 기자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번 일을 두고 M피부과의 진료가 수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권영대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홍보이사는 “피부과에서 하루에 20명씩이나 프로포폴을 주사해 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면서 “피부 시술은 핑계고 프로포폴에 중독된 환자들이 드나드는 병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부과 의사는 “피부과 시술에 프로포폴을 쓰는 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면서 “M피부과의 원장이 프로포폴 남용으로 손님을 끌어들인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약사도 “같은 날 20명이 넘게 프로포폴을 맞았다면, 프로포폴 중독자들 사이에서(주사를 놔준다고) 알려진 병원인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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