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선거 둘러싼 우파 갈등은 '근대국가냐 통일민족이냐' 대립

조선일보
  •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5.10 03:00

    5·10총선 70주년 맞아 학술회의…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주최

    "1948년 5·10 선거 실시를 둘러싼 우파 민족주의 진영 내 갈등은 근대국가 건설을 중시하는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와 통일 민족국가에 집착하는 '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의 대립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향한 첫걸음이었던 5·10 선거 70주년을 맞아 '1948년 5·10 총선의 역사정치학' 학술회의가 한국정치외교사학회(회장 김명섭 연세대 교수) 주최로 1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이택선 한국외국어대 외래교수는 '5·10 총선을 둘러싼 몇 가지 오해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당시 지식인을 포함한 많은 국민은 국제정치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통일된 민족국가의 수립을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인종적 민족주의'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었다"며 "사실상 국가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던 북한에 맞서 우리도 근대국가부터 수립해야 한다는 '시민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5·10 총선이 실시됐지만 그 결과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이런 열망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국가 밖에 '민족'이 존재하는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또, 양쪽을 대표하는 이승만과 김구·김규식의 갈등을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대립으로 간주해온 관점을 비판하고 현실주의 간 대립이란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면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는 김구와 김규식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5·10 선거를 거부하고 남북협상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1948년 5월 10일 제헌의원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1948년 5월 10일 제헌의원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한국정치외교사학회

    '5·10 총선과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조항'을 발표하는 최선 연세대 연구교수는 "제헌헌법의 경제조항이 자유시장 경제와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적절히 조화시키고자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광복 후 우리 국민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계획경제를 지지했다. 미군정 여론조사에서 주요 산업의 정부 소유와 경제에 대한 정부 통제가 높은 선호를 나타냈다. 이 같은 현상은 당시 계획경제가 시장경제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시장경제가 존재할 물적·인적 토대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제헌헌법은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 후 미군정 아래서 진행된 다양한 헌법 논의, 바이마르 헌법과 중국의 헌법 문서 등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의결한 '조선임시약헌'은 사회국가적 경제 질서를 표방했다. 제헌국회의 헌법안은 통제경제적 경제조항이 제출됐고 논의 과정에서 다소 완화됐다. 미군정은 제헌헌법의 경제조항을 국가사회주의적인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제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최 교수는 "제헌헌법의 경제조항은 1954년 제3차 헌법 개정에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것으로 부분 수정된 후 큰 변화 없이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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