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한 우리 삶이 기대되는 이유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5.10 03:00

    [연극 리뷰] 하이젠버그

    더 알고 싶어 다가가면 도망쳐 버린다.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갈지도 알 수 없다. "관찰 행위 자체의 영향 때문에,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1901~1976)의 '불확정성의 원리'. 어찌 보면 남녀 사이에 관한 은유처럼 들린다. 외따로 떨어진 입자들처럼, 외로운 사람들의 사랑도 인력과 척력이 정신없이 작용하는 법이니까.

    연극 '하이젠버그'(연출 김민정)는 물리학자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지만, 물리학 이론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무대 위엔 일흔 살이 넘도록 혼자 살아온 정육점 주인 영국 남자 알렉스(정동환)와 수다스럽고 충동적인 40대 미국 여자 조지(방진의)가 있다. 런던의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에게 끌린다. 여자는 67년간 혼자 써온 남자의 일기를 읽으며 그를 이해하고, 남자는 매몰차게 미국으로 떠나버린 여자의 어린 아들 이야기에 가슴이 저리다. 서로에게 기대면 온기가 흐른다. 따뜻하다.

    조지(방진의·왼쪽)는 자주 웃음과 욕설을 참지 못하고, 알렉스(정동환)는 가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조지(방진의·왼쪽)는 자주 웃음과 욕설을 참지 못하고, 알렉스(정동환)는 가끔 울음을 참지 못한다.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대사는 빠르고 간결하다. 줄곧 잔잔한 웃음을 짓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알렉스는 "음악은 음표 자체가 아니라 음표와 음표 사이의 빈 공간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연극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 역시 대사가 끊어질 때의 음악적 침묵으로부터 온다. 처음 함께한 밤, 여자가 잠시 방을 나간 사이 남자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정적 같은 것들이다.

    중요한 건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게 한 지독한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이 안개처럼 관객의 가슴에 스며든다. 언제 부서질지 모를 불안정한 애정이지만 오늘 맨해튼의 저녁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한번 걸어볼 만한 것이다. 어쩌면 이 사랑이 고독이라는 난치병으로부터 두 영혼을 구원할지도 모르니까. 이 연극은 그런 불확정성 속에 던져진 외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20일까지.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