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열 칼럼] 北은 1956년부터 '한반도 비핵화'를 말했다

조선일보
  • 권대열 논설위원
    입력 2018.05.10 03:17

    北 '완전한 非核化' 의사 처음?
    김일성이 1950년대부터 조선반도 비핵·평화체제 주장
    87년 레이건에게 문서로도 전달… 결국은 미군 철수, 동맹 철폐
    김정은이 遺訓 넘을 수 있을까

    권대열 논설위원
    권대열 논설위원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은 이 한 문장으로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문구도 무슨 의미일지 잘 봐야 한다고 말한다. 북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어떻게 써왔는지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956년 11월 7일 북 최고인민회의는 남한에 보내는 서한을 노동신문에 싣는다. '미국의 조선반도 핵무기 반입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연구에 따르면 '비핵화' 관련 첫 공식 입장이다. 미국이 무서워서였다. 이어 김일성은 1959년 '핵무기 없는 아시아 평화 지대 창설'을 주장한다. 그 뒤 간헐적으로 거론하다 1976년 비동맹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 비핵 지대화'를 제기한다.

    1980년대에는 더 교묘하게 포장해 선전에 나선다. 김일성은 1980년 고려연방제 실천 조치에 '조선반도 비핵·평화 지대'를 넣고, 1981년 동북아 비핵 지대 창설안을 발표한다. 문정인·이종석씨가 이번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핵 문제를 해소하려면 동북아 비핵 지대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 것과 용어는 같다. 일본 사회당과 동북아 비핵·평화 지대 협정도 맺고 동구권 국가들을 만나서도 선전했다. 김일성은 일본 아사히신문을 통해 "아시아에 전개된 제국주의자의 침략적 군사기지를 철폐하고 비핵·평화 지대를 설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일본·괌의 미군 기지도 없애라는 얘기다.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작업도 이때 이미 있었다. 1986년에 '한반도 비핵·평화 지대를 위한 남·북·미 3자 회담'을, 1987년에는 남북 10만 미만 병력 감축, 불가침 선언 및 평화협정 추진까지 함께 제안했다. 그냥 한 게 아니고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통해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문서로 전했다.

    한·미(韓美)는 목적이 뻔하다고 보고 거부했다. 북은 1986~1990년 발표한 정부 성명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핵무기 생산·보유·반입뿐 아니라 적재 가능한 항공기나 함선의 통과·착륙·기항을 금지하고 핵우산 제공 협약도 금지하며, 핵무기가 동원될 수 있는 일체의 군사훈련도 금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핵우산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사일이나 잠수함, 폭격기 등이 지원돼야 하며 훈련도 해야 한다. 요즘 용어로 '확장 억제'다. 이걸 모두 없애라는 것이다. 한·미 동맹 폐기하고 동아시아 전체에서 미군 빼라는 얘기이니 성사될 수가 없었다.

    대신 이런 30여 년 주장 끝에 남북은 1991년 비핵화 공동 선언에 합의한다. 볼턴 백악관 보좌관이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내용의 기초"라고 말한 그 선언이다. 핵무기 제조·보유·사용 금지,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금지, 비핵화 사찰 등이 담겼다. 그러나 모두 알듯 남한 내 핵무기만 철수하고 북한은 하나도 안 지켰다. 김정일도 이런 '김일성식(式) 한반도 비핵화' 전술을 그대로 이었다. 김정은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先代) 유훈'의 실체다.

    평화 체제도 마찬가지다. 1998년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4자 회담'이 있었다. 남북·미·중이 2년 정도 진행한 이 회담을 기자도 취재하러 제네바에 갔다. '북한이 미군 철수를 주장해 공전했다'는 기사만 줄곧 썼다. 그때 김계관 북한 대표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군 철수가 함께 논의되지 않으면 결코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김계관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장에서도 김정일 대신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미군에 대한 동시 조치' 주장을 읊었다.

    그때는 6자 회담으로 틀이 바뀌어 있었다. 당시 관계자들은 "북한은 회담 때마다 미군 철수나 미군 기지 사찰을 주장했다"고 증언한다. '동시적 조치'란 말 속에는 '미군 기지 동시 사찰' 등이 들어있는 것이다. 송민순 당시 6자회담 대표가 미국에 "그렇게라도 한번 해볼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받을 리는 만무했다.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와 평화 체제에는 이런 역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미군 철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제시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과는 다르다. 물론 김정은이 선대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엊그제 시진핑과 만나서도 '동시적 조치'를 말한 걸 보면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아직 그의 한반도 비핵화란 말에 환호(歡呼)할 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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