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덕스토리 감독의 냉면집, 황당한 봉변

조선일보
  • 신동흔 기자
    입력 2018.05.09 03:01

    새벽 3시 남성 2명 가게 유리문에 스프레이로 세월호 리본 그림 그려
    "미친 신념… 도리가 먼저" 벽보도

    - 정성산 감독 가게에 왜?
    정씨 "작품 홍보차 보수집회 참석, TV 프로에 방영된 후 비난 쏟아져"

    북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고발한 뮤지컬 '요덕스토리' 제작자 정성산(49)씨가 운영하는 인천의 한 음식점에 노란색 스프레이로 가로세로 1m가량의 대형 세월호 추모 리본 표지가 그려지고, 비난 벽보가 붙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벌어진 일로 정씨는 협박에 따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경찰은 정씨에 대한 탈북자 신변 보호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8일 본지 통화에서 "사건 당일 오전에 출근해 가게 입구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를 확인한 결과 새벽 3시쯤 어둠 속에서 2명의 남성이 가게 출입구에 접근해 벽보를 붙이고, 스프레이로 세월호 리본 표지를 그리더라"면서 "마치 나에게 낙인을 찍은 것처럼 섬뜩한 느낌이 들어 노란색 리본 표지는 바로 지웠고, 벽보는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정씨가 떼어 낸 벽보에는 '너의 미친 신념보다 인간 된 상식적인 도리가 먼저다. 그런 가당치 않은 신념 따위로 사람이 먹는 음식을 팔다니'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달 30일 탈북자 출신 뮤지컬 감독 정성산씨가 운영하는 인천 연수구의 한 냉면 전문점에 노란색 스프레이로 그린 세월호 추모 리본 표지와 정씨를 협박하는 내용의 벽보가 붙어 있다.
    지난달 30일 탈북자 출신 뮤지컬 감독 정성산씨가 운영하는 인천 연수구의 한 냉면 전문점에 노란색 스프레이로 그린 세월호 추모 리본 표지와 정씨를 협박하는 내용의 벽보가 붙어 있다. /정성산씨 제공

    정씨는 이번 일이 지난 2014년 9월 세월호 단식 농성을 비판하기 위해 열린 우파 '폭식 집회'의 배후를 추적한 MBC 시사 프로 '스트레이트' 최근 방송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MBC는 지난달 22일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한 집회 영상을 보여주면서 주최 측 관계자 옆에 있던 정씨 모습을 화면에 10여 초 동안 내보냈다. 당시 정씨 이름이나 발언 내용이 방송에 나가지 않았지만 이 방송 이후 각종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씨의 식당 이름과 위치 등을 담은 정보와 함께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 직후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정씨는 자신은 집회와 관련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는 "한 지인이 청년들이 모여 새로운 형식의 콘서트를 연다고 해 당시 공연 중이던 뮤지컬 '평양 마리아' 티켓을 가져가 나눠 주고 '멸공의 횃불' '애국가' 같은 노래를 했을 뿐, 해당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과는 연관이 없다"며 "MBC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적폐 청산'에 동조하는 일부 개인이 익명으로 사적(私的)인 테러를 가하는 돌출적 행동을 벌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에는 서울 마포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표지석이 두 차례나 '스프레이 테러'를 당했다. 정씨는 "정체불명의 손님들이 가게에 와서 소주 한 병만 시켜 놓고 3~4시간씩 있다 가거나, 방송 직후에는 가게로 항의 전화가 하루 100여 통씩 걸려오기도 했다"며 "10여 년 전 참혹한 북한 실상을 고발한 요덕스토리를 만들었을 때도 요즘처럼 무섭지는 않았다"고 했다.

    정씨는 1994년 북한에서 KBS 사회교육방송을 몰래 듣다가 발각돼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다가 탈북했다. 북한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경험으로 '쉬리'(1998) '실미도'(2003) 각색에 참여했고, 2006년 이후 요덕스토리 등 북한의 인권 실상을 고발하는 뮤지컬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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