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요리 똑같이 베껴 내놨는데… 찬사가 쏟아졌다

입력 2018.05.09 03:01

샌프란시스코 '인 시투' 한인 셰프, 세계 100여개 식당 요리 배워 재현
"독창적" 평가·미쉐린 별도 받아… '최고 메뉴들의 박물관' 꿈꾼다

대개 정상급 요리사들은 '다른 곳에서 흉내 내거나 맛볼 수 없는 독창적인 음식'을 지향한다. 미국에는 다른 최고급 식당 음식을 똑같이 베껴 내놓는 데다 '베꼈다'며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식당이 있다. 주인 겸 주방장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1층에 있는 '인 시투(In Situ)'다. 뉴욕타임스는 이 식당을 "미국에서 가장 독창적인 레스토랑"이라고 칭송했고 미쉐린 가이드는 별 1개를 선사했다.

인 시투는 '원래의 현장'이란 뜻의 라틴어로, 미술사학과 고고학에서는 예술품이나 유물의 위치를 설명할 때 쓰인다. 인 시투 레스토랑은 원뜻과 정반대다. 8일 현재 인 시투가 내놓는 18가지 요리 중 직접 창작한 건 4개뿐이다. 나머지는 미국·영국·이탈리아·페루·스페인 등 전 세계 유명 식당에서 내놓는 요리들을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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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식당 ‘인 시투’의 디저트 ‘이런!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렸네’. 이탈리아 유명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의 메뉴를 맛과 모양, 이름은 물론 그릇까지 똑같이 재현해 낸다. /Eric Wolfinger
이 뻔뻔한 식당의 창조적 역발상은 다른 레스토랑 메뉴를 흉내 내되 최대한 똑같이 베끼는 데 있다. 재료와 요리법, 메뉴 이름은 물론, 담아내는 그릇까지 똑같은 것을 쓰기도 한다. 논문에 비유하자면 슬쩍 표절하는 게 아니고 정식 인용하는 셈이다. 인용하고 싶은 요리는 직접 찾아가서 허락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인 시투가 내놓는 디저트 '이런!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렸네(Oops! I Dropped the Lemon Tart)'는 이탈리아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의 디저트다. 그 사실을 메뉴에 명기하고 타르트 담은 접시까지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와 똑같은 것을 쓴다.

한국계 미국인인‘인 시투’ 오너 셰프 코리 리.
한국계 미국인인‘인 시투’ 오너 셰프 코리 리. /베누
지난 2016년 문 연 이 식당의 오너 셰프는 코리 리(41·한국명 이동민)다. 지난달 30일 현지에서 만난 그는 "한국·프랑스·태국·독일·브라질·벨기에·호주 등에 있는 100개 넘는 식당들의 요리를 '컬렉션'했다"며 "대부분의 식당에서 흔쾌히 '베끼기'를 허락했다"고 말했다. "정확한 재현을 위해 세계 각지의 식당을 찾아가 배워오기도 했고, 그곳 요리사들을 초청해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레몬 타르트처럼 접시까지 그대로 사용해 달라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리 원래의 의미를 살려 샌프란시스코 주변에서 나는 제철 재료를 사용해도 된다는 요리사도 있었습니다. 인 시투만을 위해서 새로운 요리를 특별히 개발해준 경우도 있고요."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레스토랑 '베누'의 오너 셰프이기도 하다. 베누가 지난 2014년 미쉐린 별 3개를 받으면서 그는 한국인 최초의 별 3개 요리사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인 시투는 그 존재만으로 문학·음악·미술 등 고급문화(high culture)라 불리던 분야 종사자만큼이나 요리사가 문화계 인사가 됐음을 증명한다"고 했다. 음식이 고급문화가 됐고, 요리사는 미각 경험을 창조하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코리 리는 "미술관이 전 세계의 위대한 예술 작품들을 모아 일반 대중이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처럼, 인 시투는 전 세계의 미각(味覺) 걸작들을 한자리에 모아 맛보게 한다는 점에서 기본 개념이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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