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심봉사의 처절한 통곡소리… 창극으로 다시 태어나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5.08 03:01

    심청가

    심청 이야기가 익숙해도 6시간 넘는 판소리 완창을 듣기는 쉽지 않다. 안숙선(69) 명창과 국립창극단의 '아이돌' 이소연과 김준수, 신세대 소리꾼 유태평양이 함께 서는 무대로 만나기란 더 어렵다. 게다가 평생 전통 연희를 무대에 접목하며 심청가를 변주하는 데 도가 튼 손진책 연출이 개성 강한 소리꾼들을 하나로 묶었다. 지난 6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창극 '심청가'는 김성녀 예술감독이 지난 6년간 이끌어온 우리 창극 진화 흐름에 한 정점을 찍은 무대였다.

    손 연출은 "서구 리얼리즘의 액자를 깨고 우리 소리가 먼저 보이고 느껴지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무대 미술은 어린나무 속살 같은 황색 톤. 세련되고 미니멀했다. 토담을 닮은 무대장치 6개와 교자상 2개, 길고 짧은 의자들이 심청네 초가집부터 인당수 물살, 황궁 잔치까지 20여 장면을 자유롭게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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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심청(민은경·왼쪽)이 인당수 제물로 팔려가는 걸 알게 된 심봉사(유태평양)가 통곡한다. 26세 소리꾼 유태평양은 곰삭힌 슬픈 소리를 할 때 가장 돋보였다. /국립창극단
    간결한 무대여서 소리의 온도 변화가 관객 피부에 더 잘 와닿았다. 기본은 섬세하고 애조 띤 계면 성음이 특색인 강산제 심청가. 역시 슬픈 소리의 힘이 셌다. 심청 어미 곽씨 부인(김미진)이 딸 낳은 지 7일도 안 돼 세상을 뜨며 눈물 시동을 걸더니, 어린 심청(민은경)이 인당수 제물로 떠날 땐 심봉사(유태평양)의 통곡 같은 소리가 가슴을 찢었다. 즐겁고 가벼운 소리도 조화로웠다. 익살스러운 뺑덕어멈(김금미)이 딸 잃은 심봉사를 휘어잡는 대목, 맹인잔치 가는 길에 심봉사가 방아 찧는 아낙들과 노닥거리는 대목의 자진모리장단에 객석도 들썩였다. 완창 판소리의 고갱이만 추려 150분 길이의 창극으로 재구성한 안숙선 명창은 무대 위 도창(導唱)까지 직접 맡아 극을 이끌었다. 커튼콜 박수 역시 안 명창을 향했을 때 가장 컸다.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2012),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2014),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의 '적벽가'(2015), 연극 연출가 고선웅의 '흥보씨'(2017)까지, 그간 국립창극단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시도로 호평받았다. 그 마지막인 '심청가'는 그간의 파격 대신 판소리의 오롯한 힘을 믿고 시도한 낙차 큰 변화였다. 본질을 파고들자 뜻밖에 더 힘 있고 새로워졌다. 다섯 바탕 현대화 시리즈의 강렬한 마침표를 찍기에 손색없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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