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지는 해변을 걷는다. 짠내 섞인 바닷바람에 목이 탄다. 때마침 나타난 선술집. 다가갈수록 둥둥둥 기타와 베이스의 울림이 커진다. 참지 못하고 들어가 맥주부터 주문한다.
4인조 서프록 밴드 '세이수미(Say Sue Me)'의 2집 앨범 'Where We Were Together'를 듣는다면 위의 풍경이 떠오른다. 서프록은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 문화를 중심으로 생긴 장르. 최수미(보컬·30) 김병규(기타·33) 하재영(베이스·33) 김창원(드럼·26)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맥주 한 잔 마시며 바람 쐬기 좋은 부산 광안리 해변"이다. 사실 이들의 음악은 서프록으로 한정 짓기보다 기타 톤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여러 음악을 시도하는 인디 록으로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세이수미의 음악은 일찌감치 해외의 호평을 얻었다. "빌보드, BBC 라디오, 미국 스테레오검과 피치포크…." 최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이들은 자신들이 소개된 해외 매체를 나열해 보였다. "미국 밴드 '욜라 탱고(Yo La Tengo)'가 우리 트위터를 맞팔(친구 신청) 했다니깐요? 아직도 얼떨떨해요."
이들은 2012년 부산 남포동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런데 팝스타 엘튼 존이 최근 자신이 애플뮤직을 통해 방송하는 프로그램 '로켓 아워'에서 세이수미를 틀었다. 그는 첫 번째 곡으로 세이수미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끝내주죠. 아주 맘에 들어요." 부산 거점 밴드가 갑자기 전국적 관심을 갖게 됐다. 독특한 밴드명은 보컬 최수미 이름과 '나를 고소하라(Sue me)'란 뜻의 영어가 겹치면서 태어났다. 전형적인 영미권 인디밴드식 작명이다.
이들은 언제 올지도 모를 세계 무대를 기다리며 영어로 가사를 써왔다. 지난해부터 영국 포커스 웨일스,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등 해외 유수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 기회를 얻었다. 공연을 보러 온 외국 음악계 관계자들에게 자신들의 음악과 소개를 담은 USB를 직접 돌렸다. 결국 영국 인디 레이블 댐나블리(Damnably)와 계약해 이번 2집을 세계시장에 선보일 수 있었다. 2016년엔 드러머 강세민이 갑자기 쓰러져 김창원이 새 드러머로 합류했다. 새 앨범에 담긴 노래 'Funny and Cute'에서 "너 없이 새 기억을 만드는 게 두려워"란 가사에 그의 회복을 바라는 멤버들의 바람이 담겼다.
서울과 외국을 오가는 공연 스케줄에도 이들은 "우리 음악이 나고 자란 부산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외 투어 준비를 위해 트렁크를 옮기던 최수미가 말했다. "딱 1년 전 해외 공연에 뛰어들 때는 사실 많이 불안했어요. 이제 회사 다니면서 음악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오랫동안 음악만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