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으름장에… 변협, 7일만에 '의사면허 규제' 한발 빼

조선일보
  • 이기훈 기자
    입력 2018.05.07 03:00

    "형사처벌 받으면 의사면허 취소" 국회 토론회서 주장했던 변협,
    의협이 "누가 중환자 수술하겠나… 1000명 모여 집회하겠다"하자
    "규제강화는 공식 입장 아니다"

    지난 4일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비롯한 변협 지도부가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을 방문해 최대집 회장 등 의협 지도부와 만났다. 이날 양대 전문가 집단 간의 만남은 지난 1일 최대집 회장의 의협 회장 취임 사흘 만에 이뤄진 일이었지만 덕담을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자리는 아니었다.

    양측 업계에서는 "최근 변협이 의사의 형사처벌 시 면허를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것과 관련해 의협 측 반발을 달래러 갔다"는 얘기가 나왔다. 실제로 이날 만남 직후 의협은 보도자료를 내고 "김현 변협 회장은 '형사 처벌 시 의사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건 변협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의사 면허 규제 강화' 논의를 치고 나간 데 대해 변협이 고개를 숙인 모양새가 된 것이다.

    ◇왜 의사만 형사처벌 시 면허 유지하나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변협은 국회 남인순·권미혁 의원실과 함께 '의사의 형사범죄와 면허 규제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 토론회를 개최하고 "의사 면허 취소 사유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 면허는 허위 진단서 작성, 진료비 부정 청구, 의사 면허 대여, 비도덕적 진료 행위(마약 투약, 일회용품 재사용) 등 의료 관련법을 위반해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될 때만 취소될 수 있다. 살인이나 강도, 성폭행 등 일반 형사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더라도 면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살인범이라도 형을 살고 나오면 다시 메스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2013~2017년 의사 면허 취소자 수 그래프

    이를 두고 그간 범죄 종류와 무관하게 금고형 이상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변호사·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에 비해 너무 느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의사 출신 박호균 변호사는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 다른 전문직보다 도덕적 기준이 낮아야 한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 집회신고까지 내며 반발

    의료계는 토론회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 발끈했다. 다른 전문직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면 수술 도중 환자가 목숨을 잃는 경우 형법상 과실치사 등으로 면허를 잃을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누가 중환자를 보겠느냐"는 것이다.

    의협은 토론회 개최 전부터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법 개정을 논의하겠다는) 대한변협과 국회의 움직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지금 당장 해당 심포지엄 및 개정안 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토론회가 끝난 뒤엔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이 "서울 강남구 변협회관 앞에서 1000명 규모로 집회를 열겠다"며 실제 집회 신고까지 냈다. 전의총은 최대집 의협 회장이 취임 직전까지 상임대표를 맡은 단체다. 의협 관계자는 "의료계의 반발 여론을 감안해 변협 지도부 측에서 먼저 만남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단 변협이 한발 물러선 모양새가 됐지만 양측 간 갈등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한 변호사는 "의료계가 공론장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실력 행사를 예고하며 압박한 것은 전문가 단체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았던 신현호 변협 인권위 부위원장은 "1년여 전부터 변협 예산으로 관련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변협 상임이사회 의결을 거쳐 마련한 토론회를 소속 변호사가 개별적으로 마련한 자리인 듯 말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실제 변협 인권위는 계속 논의를 진행해 변협 차원의 의료법 개정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변협 측에서 의례적인 표현을 했을 뿐인데, 의협에서 소속 회원 보여주기용으로 과장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현 변협 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의협의 신임 집행부 출범을 계기로 인사 차원에서 만난 것"이라며 "(의사 면허 규제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되는 단계인데 마치 변협이 확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듯 알려져 (의협 측에) 유감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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