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교수들, '홍대 앞 풍경'을 바꾸다

조선일보
  • 김상윤 기자
    입력 2018.05.07 03:00

    학교 앞 은행 건물 리노베이션한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5인
    뼈대 남기고 내부 절반 계단으로… 복합문화시설 '청춘마루' 개관

    서울 홍익대 정문 앞에 오래된 은행 건물이 하나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지어진 KB국민은행 지점이다. 40년이 지나는 동안 건물 주변은 주택가에서 미술학원가로, 인디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프랜차이즈 점포들의 거리로 거듭 변했다. 그사이 은행은 인터넷 금융 흐름에 밀려 쓰임새를 잃었다.

    문 닫은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홍대 건축대 교수 5명이 머리를 맞댔다. 처음 은행 의뢰를 받은 사람은 이현호 교수였다. '건물 틀을 유지하면서 공연·전시장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교수는 홍대 교수들의 협업을 제안했다. "그냥 두긴 아까운 건물이었습니다. 외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위치가 아주 좋으니까요. '홍대'라고 불리는 곳에 홍대 이름으로 작품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 교수 요청에 이영수·이경선·장용순·김수란 교수가 응했다. 이들은 건물 뼈대는 그대로 남겨두고 내부를 뜯어고쳐 복합문화시설 '청춘마루'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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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건물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꾼 홍익대 교수들이 1층 계단 공간 위에 모였다. 교수들은 “홍대 앞에 잠시 앉아 쉴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수란·장용순·이영수·이경선·이현호 교수. /이태경 기자
    지난달 27일 문을 연 청춘마루는 이름 그대로 청춘을 위한 공간이다. 교수들은 "홍대 앞에 누구나 잠시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1·2층을 절반 가까이 허물어 계단형 공간을 만들었다. 누구나 앉아서 쉴 수 있다. 나머지 공간에선 작가들의 작품 전시와 밴드 공연, 토크 콘서트 등이 열릴 예정이다. 입장료는 무료다.

    청춘마루의 상징인 노란색 대형 계단은 지하 1층에서부터 옥상까지 꺾여 올라간다. 은행 금고와 창구, 사무실이 있던 곳에 공연장, 갤러리, 세미나실이 생겼다. 건물 안 계단은 평소엔 북카페, 공연 때는 객석으로 쓰인다.

    열주(列柱) 위에 몸체를 얹은 콘크리트 뼈대는 그대로 남았다. 애초 은행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세운 건축사무소 '공간'에서 설계했다. 한국건축가협회장을 지낸 오기수 스페이스오 대표가 당시 담당 건축가였다. 오 대표는 "내 작품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했다. "당시 중요한 결정은 전부 김수근 소장이 내렸으니까요. 제가 김 소장께 자료를 만들어 보고하면 소장이 결정하는 식이었어요." 당시 콘크리트를 노출시켜 건물 전체를 마치 조각품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 이 건물의 디자인 의도라는 것이 오 대표의 설명이다.

    리노베이션을 마친 ‘청춘마루’ 전경. 건물 뼈대만 남기고 내부를 완전히 바꿨다.
    리노베이션을 마친 ‘청춘마루’ 전경. 건물 뼈대만 남기고 내부를 완전히 바꿨다. /이태경 기자
    내부 공간 절반을 계단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장용순 교수가 처음 냈다. 그는 김수근 작품인 세운상가를 재생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계단이 큰 만큼 공간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현호 교수는 "연면적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계단의 잠재성은 단순한 면적보다 크다'고 은행을 설득했다"고 했다. "만약 개인 건축가 자격으로 맡았다면 금융기관이라는 건물주의 보수성을 의식해 지금 같은 건물 구조는 어려웠을 겁니다."

    '청춘마루'처럼 1960∼70년대 지은 건축물은 대개 철거되다가 최근 도시 재생이 화두가 되며 리모델링을 거쳐 보존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근대건축 연구단체 '한국도코모모'를 설립한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청춘마루 프로젝트는 1960∼70년대 건물 리노베이션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윤곽을 유지하면서도 내부 공간을 반전시킨 점이 참신하다"며 "은행이 인근 대학 교수와 함께 지역사회를 위한 시설을 만든 것도 의미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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