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북촌의 소크라테스 "미지근하게 살면 지옥에도 못 가"

입력 2018.05.05 06:00 | 수정 2018.05.08 23:28

인문 에세이 ‘수련'낸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
자기 임무 모르고 사는 게 진짜 ‘무식’... 부러워하는 삶 멈춰야
칭찬도 욕도 안듣고 살면 지옥에도 못 가
하루 10분 ‘자발적 고립’… 안해도 되는 일만 덜어내도 인생 선명해져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 2016년의 ‘심연'에 이어 최근 출간한 ‘수련' 그리고 이어질 ‘정적'과 ‘승화'까지, 그는 종교 없는 자들을 위한 ‘21세기형 경전'을 쓰는 중이다./사진=조인원 기자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에게 물었다. “누가 이렇게 고통 속에서 울부짖습니까?” 베르길리우스가 대답했다. “이 불쌍한 영혼들은 불쌍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았다. 그들은 오명도 없고 명성도 없고 미지근한 영혼들이다(단테 ‘지옥') … 그들은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죽지도 못한다. 지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테는 이 비겁한 자들을 지옥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최악의 인간으로 묘사했다.’

‘죄는 각자가 걸어야 할 최선의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삶의 태도이며, 그 존재를 알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게으름이다'

‘어떤 사람에게 탁월함이 있다면 그것은 ‘습관'이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나의 습관이 지은 집이다.’-배철현의 ‘수련' 중에서.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인문 에세이 ‘수련'이라는 책을 냈다. 한때 이목을 끌던 종교인들의 힐링 에세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문장은 짧고 단순하되 오래 참고 생각한 자의 지적 악력으로 골수에 창날처럼 박힌다.

2016년 ‘심연'에 이어 최근 출간한 ‘수련' 그리고 이어질 ‘정적'과 ‘승화'까지, 배철현은 종교 없는 자들을 위한 ‘21세기형 경전'을 쓰는 중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스 철학부터 이슬람의 ‘코란' 기독교 ‘성경'까지 인문 고전과 종교의 텍스트를 뜨거운 사유의 용광로에 녹여 보석 같은 ‘잠언'으로 정련한 이 모든 저작의 목표는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그는 서문에서 ‘나는 ‘위대한 나 자신'을 흠모하다'고 썼다. 자신에게 자랑스러우며 공동체에 절실한 인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자발적 고립'의 필수 조건이라고 했다. 배철현은 2012년 가평군 설악면 전원주택으로 이사가 자발적 고립을 실천하고 있다. 직장인 서울대학교에서 70km 떨어진 곳이다.

나이 오십이 되는 해 “새롭게 살기 위해 나를 들여다보기로" 결심했고, 단언컨대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선물한,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새벽 5시 반에 출발하면 학교까지 1시간 10분이 걸린다.

-‘자발적 고립'의 일상은 구체적으로 어떻습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1시간 동안 좌정을 해요. 좌정은 직립의 역행이에요. 다리를 묶고 시선을 묶는 행위죠. 그다음 머릿속으로 ‘무엇을 하지 말까'를 고민합니다. 쓸데없는 걸 안 하는 행위가 창조예요. 어원이 그렇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 하시니 하고 나오는데요. 혼돈에서 쓸데없는 걸 덜어내는 게 창조지요. 그게 질서고, 그 질서를 우주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엔 무엇을 하나요?

“단어 하나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책을 읽지요.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몽테뉴의 ‘수상록' 등 자기의 희망과 절망을 섬세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성경은 매일 읽어요. 경전은 다른 책과 달라 정성을 쏟을수록 의미를 보여줍니다. 단어 하나가 히스토리예요. 침묵 속의 웅변이라고, 쓰인 것보다 쓰이지 않은 비밀들이 발견되길 기다립니다.”

그가 히브리어 성경을 꺼내 몇 글자를 원문으로 읽어나갔다. 영어도 불어도 중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고대어가 지닌 형상과 발성이 가히 신비로웠다. 순식간에 기원전으로 시간이 플래시 백 되는 느낌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앉아 히브리어 성경을 읽는다. 경전은 정성을 쏟을수록 의미를 보여준다고.
-특별히 좋아하는 구절이 있습니까?

“룻기는 간단하지만, 단어가 춤을 추지요. 시편이 아주 좋습니다. ‘(히브리어로 글자를 짚어 읽으며)행복한 사람은 악을 행하는 사람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죄를 짓는 사람의 곁에 서지 않고, 남을 욕하는 자의 자리에 있지 아니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행복한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뭘 안 하는 사람입니다(웃음). 저는 단어에서 출발하는 고전문헌학자라 개념을 어떻게 파악할지, 단어를 어떻게 장악할지가 항상 중요합니다.”

-행복이 ‘무엇을 안한다'는 부정태에서 시작한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행복(Happiness)과 우연을 뜻하는 단어 해프닝(Happening)의 어근이 같다는 지적도 새로웠어요. 행복은 기실 요행이며 마음의 상태일 뿐 외부 조건과는 상관이 없다고요.

“맞습니다. 행복은 우연한 사건일 뿐이죠. 18세기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밴덤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으로 행복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행복을 팔았던 거죠. 혹자는 플라톤의 ‘윤리학’에 등장하는 유다이모니아(eudaimonia)를 행복이라고 오역하는 데, 틀렸습니다. 유다이모니아는 자기 삶에서 찾은 고유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에요.”

-요즘은 ‘소확행'이라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유행입니다만.

“행복은 절제의 예술이에요. 행복학파인 아테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말했죠. ‘나는 밀크와 치즈 하나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수준을 아는 게 행복입니다. 행복은 결국 적게 가지는 데서 와요.

에피쿠로스가 말한 행복의 조건은 3가지입니다. 첫째 수준을 알아라. 둘째, 친구를 사귀어라. 셋째, 묵상하라.

특히 에피쿠로스는 친구를 정원공동체로 확장했는데 이게 4세기 이후 수도원이 됩니다. 적게 재배해서 나눠 먹는 공동체죠. 재미있는 건 칼 마르크스가 ‘에피쿠로스의 공동체 이론'으로 독일 예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행복학이 공산주의 이론의 토대가 된 거죠(웃음).”

-공부는 원래 좋아했습니까?

“훌륭한 스승을 만났어요. 하버드에 있을 때 고대 근동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휴너가르드 교수의 수업을 들었어요. 고전 에티오피아어를 배웠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만두려고 찾아갔어요. 저를 지그시 보더니 묻더군요. “너는 뭐가 재밌니?” 순간 멍해졌어요. 저는 그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때까지는 공부는 그냥 하는 거였지 재미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휴너가르드 교수는 그에게 두 가지 화두를 던져주었다. ‘재미있는 걸 해라' 그리고 ‘Show yourself!’. 그때부터 배철현의 ‘myself’를 찾는 여정이 시작됐다. 그가 스승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조깅하는 습관이었다. “그분이 마라톤 선수였어요. 저한테도 운동하고 나머지 시간에 공부하라고 했어요(웃음). 제 두 번째 스승은 우리 집 두 마리 진돗개예요. 그 아이들이 저를 뛰게 하거든요. 스승이 딴 게 아닙니다. 나를 변화시키면 스승이죠.”

-당신은 무엇을 가르치는 스승입니까?

“저는 학교에서는 종교학을 가르치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가르칩니다.”

-그 많은 종교를 가르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종교는 문명을 만든 사상적 근간입니다. 기독교엔 서양사가 있고 이슬람엔 중동의 역사가 있죠. 시진핑을 이해하려고 해도 유교와 도교를 알아야 합니다. 더불어 저는 희랍어, 라틴어, 아랍어, 히브리어를 공부했고 경전을 해석해서 영원의 세계와 죽음의 문제를 가르칩니다.”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배철현의 저서 ‘수련’.
-당신에게 신은 어떤 존재입니까?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그 존재를 물었을 때 신은 ‘나는 나다'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도 번역하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이 ‘신'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내가 되고 싶은 나’라고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전작인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당신이 곧 신이다. 당신 안의 신성을 발굴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는데, 반기독교주의자인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비해선 점잖지만, 여전히 도발적인 접근입니다.

그는 리차드 도킨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때론 과학 그 자체가 신으로 숭배되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그의 스승인 윌슨의 ‘사회생물학'에서 영감을 얻어 1975년 ‘이기적 유전자'로 일약 스타가 됐어요. 하지만 윌슨이 이후 ‘지구의 정복자'라는 책에서 기존의 자기주장을 바꿔 진화에서 중요한 건 혈연 선택이 아니라 집단 선택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진화의 열쇠는 도킨스가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이타심’이라는 거죠. 생물학계는 여전히 그 일로 논쟁 중이에요. 하지만 둘러보면 이타심은 이미 선진국의 보이지 않는 질서로 자리 잡았고, 혁신적인 제품과 사회 시스템의 문법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유발 하라리는 어떤가요? ‘사피엔스'에서 기술 발전으로 ‘인간은 신이 되려 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유발 하라리는 AI로 너무 겁을 줍니다. 제가 알기로 AI와 4차 산업혁명은 공포마케팅에 불과합니다. 당장 구글 번역조차 믿을 수 없어요. 구글이 단테의 ‘신곡' 한 구절도 번역을 못 해요. 2천 원짜리 카시오 계산기가 나보다 계산을 잘한다고 나와 맞바꾸겠다는 격입니다. 진화생물학자 스테판 제이굴드가 말한 인류의 급격한 도약을 강한 인공지능으로 설명하겠다는 건데,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없어진 하이브리드 상태를 신이라고 하는 건 제 주장과 아주 다릅니다.”

유발 하라리에게 신은 생명을 설계하고 불멸에 이르는 높은 수준의 과학이며, 배철현에게 신은 심연, 수련, 정적, 승화의 단계를 거친 높은 수준의 인식의 단계다. 우주의 설계자와 대등하게 서려는 인간의 ‘역동'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야심차다.
그가 과학에 대한 문제로 방향을 틀었다.

“과학은 우주와 생명의 근본 문제를 해결 못 해요. 과학은 모르는 걸 시인하는 학문이에요. 미국 최고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발견한 암흑물질은 97%가 다크에너지로 이루어졌다는 발표인데, 그건 결국 모른다는 걸 표현한 거죠. 과학자는 보이는 0.00001%로 99% 모르는 세계를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주에 대한 경외심이 생깁니다. 아인슈타인은 유일신을 믿지 않았지만 심오하고 종교적인 사람이었어요.”

-각 종교에서 추출한 지혜가 있다면 무엇이지요?

“샬롬입니다(웃음).”

-샬롬은 기독교에서 ‘평안'을 뜻하는 인사로 쓰이는데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아랍 사람들은 아랍어로 ‘(마아)살라마’라고 하죠. 오래된 셈족어 어근 ‘샬람’(shalam)에서 나왔어요. 기원전 23세기 신전의 경제 문서의 쐐기 문자에서 발견됐는데, 진짜 뜻은 ‘돈을 다 갚은 상태’예요.”

-샬롬의 뜻이 ‘돈을 다 갚은 상태’라고요.

“네. 은유적으로 풀이하면 태어나면서 진 빚을 다 갚은 상태, 삶에서 자기가 해야 할 임무를 다한 상태죠. 코란에 따르면 마지막 날 신이 내려와서 ‘마아 살라마'라고 묻는데 그 말은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느냐?’예요. 심판은 십계명을 어겨서 벌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할 일을 다 했느냐를 보는 거죠.”

단테의 사후세계 여행서인 ‘신곡’에는 곱씹어볼 만한 아주 중요한 구절이 나와요. 지옥의 세 번째 노래에서, 단테가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서사시인)에게 “지옥의 성문에도 못 들어가서 신음하는 저 사람들은 누구냐?”고 묻죠.”

-그 부분은 저도 기억합니다. 가히 충격적인 장면이었어요.

“그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칭찬도 받지 않고 욕도 먹지 않고 산 미지근한 영혼들이라는 거죠.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소심하고 비겁한 자들, 그들은 죽은 채로 삶을 낭비한 자들입니다. 단테는 이 비겁한 자들을 지옥에도 못 들어가는 최악의 인간으로 묘사하죠. 홀로코스트 생존 작가인 엘리 위젤이 말했죠. 역사적 폭력 앞에서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 모습이 최고의 악이라고요. 그 개념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도 나옵니다. ”

-인간이 미지근해지고 비겁해지는 이유가 뭡니까?

“목숨을 바쳐서 할만한 감동적인 임무를 못 찾아서죠. 비겁은 위대한 자신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에서 와요. 그렇다면 죄는 무엇인가? err(실수를 범하다)의 근본 의미는 ‘길을 잃다, 목적을 상실하다'예요. 죄는 목적을 상실했을 때 나오는 실수예요. 그래서 우리는 중고생들에게 수시로 ‘목적'을 물어야 해요. “너는 뭐가 재밌니?” “너는 뭘 하고 싶니?” 지식은 ‘내가 누구인지, 내 임무는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무식은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배철현은 2013년부터 3년간 죄를 짓고 복역 중인 남부교도소의 수감자들에게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립'이나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노숙자들에게 철학, 시, 미술사, 논리학 등을 가르쳐 갱생을 도왔던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가 모델이었다. 살인과 성범죄 등을 저지른 수용자들이 모인 그 교실은 ‘플라톤의 동굴'이 됐다. 감옥에서의 가르침과 배움의 기록은 ‘낮은 인문학'이라는 책으로도 나왔다.

2015년엔 대한민국 최초의 인문학교 ‘건명원'도 발족시켰다. 기업인 오정택 회장이 100억을 기부해서 서울 북촌에 만든 건명원에는 첫해 30명 모집에 900명이 몰려왔다. 배철현의 주도로 최진석(서강대 중국철학), 김대식(카이스트 뇌과학), 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 등 국내 석학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했고, 동서양의 고전, 과학, 역사, 예술을 총망라한 ‘지식의 향연’이 펼쳐졌다.

서울대 출신, 고졸 출신, 실업자, 케임브리지 졸업생이 함께 뒤엉켜 ‘세상에 없던 학교'가 탄생했다.

배철현 교수가 주도해서 뼈대를 갖춘 실험적인 교육 기관 건명원. 19세부터 29세 청년 30명을 뽑아 10개월 동안 무료로 교육한다.
-어떤 자격을 가진 사람이 그런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까?

“눈이 살아 있고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1등이 되겠다는 결기가 있는 사람들을 뽑죠. 심층 면접으로 뽑아요. 글을 쓰든, 노래하든, 떡볶이를 만들든 장르는 상관없어요. 건명원은 학력은 안 보고 나이만 봐요. 19~29세 청년만 받습니다. 사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싶었는데 법적 문제 등이 걸려서요.

원장인 최진석 교수는 도덕경을 가르치고 저는 라틴어를 가르칩니다. 가르친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에요.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산파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데 학문 열기가 실로 엄청나요. 모든 게 공짜인 대신 제대로 안 하면 바로 정학이죠(웃음).”

북촌의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스턴트무예의 일종인 ‘빠르꾸르'를 하는 젊은이는 무술로 놀라운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라틴어 수업에서는 만점을 받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에게서는 번쩍번쩍 빛이 납니다. 그게 카리스마고 아우라죠.”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받은 고다이라를 일본 선진 사회를 대변하는 유대한 개인으로 추켜세웠다. 극도의 환희의 순간 고다이라가 보여준 자기 억제와 상대에 대한 존중은 그 사회의 문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나온 결과라고.
-나에 대한 ‘시선 집중’이 곧 모더니티의 출발이라고도 하셨어요. 타인을 향하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건 굉장히 혁명적인 모먼트입니다만.

“맞습니다. 조각가 자코메티는 그 시선의 방향을 자기에게 돌린 예술가로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때까지 조각은 어떤 정해진 형태를 배워야 한다는 거였는데, 자코메티는 로댕의 제자인 부르뎅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다 뛰쳐나와서 ‘조각은 내가 나를 보는 시선에 있다'고 선언했어요. 자기를 들여다보고 나 자신의 감동적인 형태를 표현했는데 그게 모더니티죠. 그렇게 자신에게 집중했던 ‘위대한 개인’이 아인슈타인, 니체,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 같은 사람들이지요.”

-그런 식이라면 ‘위대한 개인’은 보통 사람들에겐 버거운 길입니다.

“위대함은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 개념이에요. 자신에게 감동적인 부분을 발견하는 거죠. 1850년대 미국 시인 휘트먼이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를 썼어요. 스스로 뮤즈가 돼서 ‘나 자신을 찬양하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는 시에요. 우리가 언제 ‘나를 위한 찬가’를 불러본 적이 있던가요?”

-결국 선생이 전하는 복음의 실체는...

“(미소 지으며)제 복음은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흉내 내는 삶을 멈출 수 있죠.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니 타인의 삶에 중독되고 분노하는 겁니다. 방송에서 남 먹는 거 쳐다보고, 갑질하는 재벌들 욕하는데 따져보면 근본적인 적폐는 내 안에 있어요. 해결책이 뭐냐? 사람이 자기 자신을 심오하게 쳐다봐야 한다는 거죠. 나를 보는 데 인색하고 시선이 남에게만 가 있으니 남의 불행에 반색하죠.”


현대인이 ‘자발적 고립'을 통해서 자기에 대한 심오한 시선을 회복할 수 있다.

“사막이든 산티아고든 40일 동안 여행을 떠나 홀로 있으면서 자기 삶의 목적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걸 못하면 하루에 잠깐이라도 좌정해야 합니다.”

“인문학은 자기를 심오하게 보는 연습입니다. 나와 상관 없고, 심지어 몰라도 되는 정보의 바다에 빠지면 순식간에 길을 잃고 정신을 놓쳐버립니다.”
-좌정하면 정말 진부한 삶에서 헤어나올 수 있나요?

“있어요. 자기에게 편리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단 10분이라도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그 자리는 예루살렘보다 메카보다 거룩해요. 나를 변화시키니 종교적인 시간이죠. 내가 날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날 위하겠어요. 그 자리에서 내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 뭔가를 떠올리세요. 한 달 동안 안 해도 될 일을 적어서 정말로 안 하도록 노력해보세요. 그러면 자기가 진짜 할 일이 생겨요. 그걸 하세요.”

-요즘엔 무슨 생각을 합니까?

“무엇을 생각할까,를 생각합니다(웃음). 안락한 집을 떠나 수련의 길로 들어섰고, 이제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정적의 순간을 생각합니다.”

자기 임무를 알고 사는 자, 생각의 군더더기를 뺀 중년 학자의 인상은 더없이 맑고 명료했다. ‘생각은 내 삶에 없어도 되는 것들을 분별해내는 능력’이니, 몰라도 되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헤매지 말고 ‘고독한 자기’를 보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라던 당부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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