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과 쇠파이프… '검은 복면' 청년들에 공격당한 파리

입력 2018.05.04 03:00

노동절 폭력시위 주도, 왜?

평등보다 경쟁 앞세우는 마크롱 '대학 개혁'에 반발
소셜미디어 통해 1200명 모여 닥치는 대로 상점·차량 부숴
도넘은 폭력에 여론은 싸늘

지난 1일(현지 시각) 노동절을 맞아 파리 13구에서는 노동총동맹(CGT) 주도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 개혁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3만여 명이 참가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노동계 집회였지만 갑자기 시위대 중간에서 복면을 한 젊은이 1200명이 앞으로 나서며 상황이 돌변했다. 이들은 기습적으로 망치나 쇠파이프로 닥치는 대로 길거리 상점을 부쉈다. 창문을 깨고 내부 기물을 망가뜨렸다. 길가에 세워진 차량 유리창을 깨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일부는 페인트 스프레이로 "파리여 깨어나라"며 시위를 선동하는 글을 썼다. 모두 31개의 상점과 16대의 차량이 초토화됐다.

폭동 수준의 과격 시위에 놀란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대응했다. 폭력 시위범 109명을 체포했다. 이들의 소지품을 조사했더니 칼과 인화 물질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경찰은 복면을 한 시위대가 '블랙 블록(Black Blocs)'이라는 극단주의 반정부 세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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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터지고… 짱돌 날리고… - 지난 1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거리에 최루탄 가스가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를 끼고 두건을 뒤집어쓴 한 시위대가 돌을 던지고 있다. 이날 노동총동맹(CGT)이 노동절을 맞아 주최한 노동개혁 반대 집회에‘블랙 블록’이라는 극단주의 반정부 집단이 난입해 도로 옆 가게와 주차된 차량을 부수고 불을 지르며 시위가 급격히 과격화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검거된 시위대의 60%가 18세에서 28세 사이 젊은이였다. 3분의 1이 여성이었다. 블랙 블록은 유럽의 반자본주의, 반세계화 시위 때 복면을 하고 나타나 폭력 시위를 하는 무정부주의 단체다. 1990년대 독일에서 처음 조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이번 노동절을 앞두고 블랙 블록이 폭력 시위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소셜 미디어의 익명 계정을 통해 시위 참가자를 모집했다. 컴퓨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암호화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시위를 기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 블록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에도 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이들이 주도한 폭력 시위가 드물다. 유독 프랑스에서 블랙 블록의 폭력 시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마크롱 취임 이후 프랑스 사회가 친(親)자본주의 성향이 짙어지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간 리베라시옹은 "(블랙 블록이) 자본주의 상징을 겨냥했다"고 했다. 블랙 블록 시위대가 미국계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널드 가게 한 곳을 완전히 망가뜨린 것이 그 사례다. 이들이 파손한 차량은 메르세데스 벤츠 등 고급 차량이 다수였다. 길거리 낙서에는 "부르주아 국가를 반대한다"는 글들이 있었다. 프랑스 특유의 사회주의 전통이 점점 옅어지는 데 위기감을 폭력 시위로 표시한 것이다. 일부 블랙 블록 대원은 옛 소비에트 연방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국영철도공사(SNCF)의 파업 참가율이 갈수록 저조해지는 등 노동계를 비롯한 반정부 세력의 입지가 줄어드는 데 대해 반전을 꾀하기 위해 의도적인 폭력을 행사했다는 의견도 있다. 르네 프레고시 소르본대 교수는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일부러 과도한 폭력을 써서 경찰의 폭력 진압을 유도하고, 그에 따라 국가가 개인을 억압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극좌파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했다. 블랙 블록은 이날 시위에서 페인트로 'ACAB'라는 표현을 곳곳에 남겼다. 영어로 '모든 경찰은 개자식들(All cops are bastards)'이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이날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도 마크롱의 교육 개혁을 반대하는 일부 젊은이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평등주의를 깨고 대학에 경쟁 원칙을 도입하려 한다. 그동안 프랑스에서는 대입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만 통과하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지원자가 몰리는 대학·학과는 추첨으로 학생들을 선발해왔다. 하지만 마크롱은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주는 방식으로 서서히 전환하려고 한다. 일간 르몽드는 "전임 올랑드 정부 시절부터 노동 분야에서는 고용 안정성을 낮추고 교육 분야에서는 경쟁 원리가 강조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벌이는 시위도 점점 과격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보도했다.

과도한 폭력 시위에 여론은 싸늘하다. 극우부터 극좌까지 거의 모든 정치인이 폭력 시위를 규탄했다. 프랑스 정부는 향후 폭력 시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2일 시위 피해 현장을 찾은 제라르 콜롱 내무장관은 "앞으로 시위 경비 인력을 늘려 폭력 시위가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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