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초 대통령·비서실장방 장식한 '월전 장우성'
문대통령 취임1주년 청와대 소장품 전시에서 제외
MB정부때 철거됐던 '통영항'은 靑 돌아와 전시목록에

청와대가 취임 초기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에 걸려있던 월전 장우성 화백의 작품을 철거한 사실이 3일 뒤늦게 전해졌다. 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은 한국화(동양화) 대표 작가로 꼽힌다. 그는 지난 2003년 ‘아슬아슬’이라는 작품으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다.

아슬아슬(2003)

이런 사실은 청와대가 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청와대 본관·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청와대 주요 공간의 미술 작품을 공개 전시한다고 홍보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장 작품 중 관련 기관의 자문과 추천을 바탕으로 문 대통령의 집무실에 있는 그림과 본관 세종실과 인왕실에 있는 그림이 모두 (사랑채로) 나간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오는 9일부터 일반인 접근이 가능한 사랑채 1층에서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 함께 보다’를 통해 소장품들을 전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606점이고, 이중 정부가 공식관리하는 미술품은 190점 정도”라며 “이중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등 기관·단체·인사들과 협의해 30여점 정도 대표작을 골랐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까지 문 대통령 집무실과 임종석 비서실장 사무실 등 청와대 주요공간에 걸려있던 월전의 그림은 단 한 점도 전시 목록에 들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까지 대통령 집무실 벽에는 월전 장우성의 ‘운봉(雲峰, 1991)’이 걸려있었다. 월전의 ‘가을(연대 미상)’도 같은 시기 비서실장 사무실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운봉(雲峰, 1991)

장 화백의 두 그림은 청와대가 오래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작품이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정부가 보유한 장 화백의 그림은 ‘운봉’, ‘가을’, ‘매화’, ‘기러기’, ‘송학’, ‘국화’, ‘대련’ 등 총 28점이다.

월전은 담백한 문인화로 왜색을 벗어낸 ‘한국화’를 개척했고, 그렇게 한국화단의 대표적 인물이 됐다. 이순신 표준영정도 월전이 그렸다. 100원짜리 동전에 담긴 충무공의 얼굴도 이 영정이 바탕이 됐다. 김유신, 권율, 정약용, 강감찬, 윤봉길, 정몽주 영정도 그의 작품. 이당 김은호를 사사했고,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제자를 길러냈다. 그러나 말년에는 ‘친일’ 시비가 붙기도 했다.

월전이 그린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그럼에도 정치적 발언을 자주 하지 않던 월전은 2003년 노 전 대통령과 묘연(妙緣)을 맺는다. 2003년 11월 공개한 ‘아슬아슬’이라는 작품에 한시(漢詩)를 적어 넣은 것. 번역하면 이렇다. “무심코 새 차를 탔더니 ‘갈 지(之)’자로 운전하더라. 승객들이 깜짝 놀라 간이 콩알만해져 누가 운전하느냐 물었더니 초보운전자라 하더라. 이러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노 전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월 ‘나라사랑 원로모임’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월전의 그림에 답하듯 이렇게 말했다. “지금 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 운전석에 앉은 제가 할 일은 차를 바르게 몰아 승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다음 대통령이 기다리는 목적지까지 가게 하는 일이다. 맡은 구간만큼은 운전을 잘 하겠다.”

“집무실 전시작이 모두 출품되는데, 월전의 그림은 왜 빠졌는가” 묻자, 청와대 관계자는 “통상적 순환”이라고 답했다. 이어 “(장 화백의) 작품들은 다 갖고 있다. 수장고에 들어가 있을 수도, 전시돼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집무실의 ‘운봉’에 대해서는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의 의미를 ‘임기의 시작을 알린다’는 취지로 취임 직후부터 100일간 집무실에 걸었다가 100일이 지나자 ‘떠오르는 시작은 이제 끝났다’는 의미로 그림을 교체했다”고 해명했다. 또 비서실장 사무실의 ‘가을’에 대해서는 “계절적 느낌을 살려 가을까지 걸려있다가 겨울을 맞아 그림을 교체했다”고 했다.

청와대가 장 화백의 두 작품을 교체했다는 시기는 지난해 9월 30일 본지 기사가 나간 시점과 맞물린다.

전혁림 화백의 2006년작 '통영항(한려수도)'

통영의 대표적인 화가 전혁림(1916~2010) 화백이 그린 ‘통영항’은 월전의 작품들과 반대로 처지가 180도 바뀌었다. 기존 미술계와 불화했던 전혁림은 국전 비리를 폭로한 후 고향 통영으로 내려가 한평생 묻혀 살았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는 ‘통영항’을 제작해 인왕실에 전시했지만,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그림을 떼어내 청와대밖 국공립미술관 수장고에서 보관했다. 문재인정부는 통영항을 찾아 청와대에 다시 걸었다.

한국화가인 월전 장우성(왼쪽), 추상화가인 전혁림(오른쪽) 화백.

문 대통령은 특별전 인삿말을 통해 “(이번에 공개하는 미술품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겪어온 역사적 장면들의 배경이 되어주었고, 해외 주요 인사들에게는 한국을 소개하는 작품으로 묵묵히 그 자리를 빛내왔다”며 “언론을 통해 스치듯 볼 수 밖에 없었던 작품들을 공개함으로써 본래 주인에게 돌려드리고자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