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세계 4위 中 대형 통신기술 기업의 민낯

입력 2018.05.03 03:12

中 업체, 글로벌 기업 무색하게 이란과 비밀 거래하다가 덜미
말로만 시장 개방·규칙 준수… 국제 사회 不信 잠재우지 못해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지난달 하순 중국 인터넷은 미국 성토대회 분위기였다. 미 상무부가 지난 4월 15일 이란 제재법 위반을 이유로 중국 통신제조업체 중싱(中興·ZTE)에 대해 7년 동안 미국 기업과 거래를 못 하도록 제재를 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내 반응은 미국이 500억달러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을 때보다 더 격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2위, 세계 4위 통신설비업체인 중싱이 이번 조치로 망할 수 있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중싱은 한 해 필요한 반도체 칩의 절반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당장 전 세계에서 수주한 통신 설비를 제대로 납품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공급을 중단하면 연간 4000만 대 넘게 생산하는 스마트폰 생산도 불가능해진다.

중국 네티즌들은 "중싱이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역 전쟁 와중에 희생양이 됐다"고 했다. 사소한 잘못을 이유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중국 기업에 치명적인 제재를 내린 것은 중국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비난한 글도 있었다. 당장 미국 상품 불매운동으로 맞불을 놓자는 반응도 나왔다. 관영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미국이 5세대 이동통신(5G)을 선도하고 있는 중싱의 기세를 꺾기 위해 손을 쓴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중싱이 미국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조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 증거인멸, 속임수를 쓴 사실이 속속 전해지면서 중국 내 여론은 반전(反轉)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 타이틀이 무색하게 국제사회 규칙을 어겨온 중싱이 이번 일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싱이 이란 통신 기업 TCI에 IBM, 오러클 등 미국 기업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제품 수백만 달러어치를 수출한 혐의가 미 연방수사국(FBI)에 포착됐다. 당시 미국 연방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중싱 고위 임원은 관련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앞으로 이란과 모든 거래를 끊겠다고 했다. 그러나 뒤로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그 이후에도 수천만 달러어치의 거래를 계속했다. 담당 직원에게 비밀 각서를 쓰게 하고, 증거인멸팀을 구성해 거래 관련 기록을 삭제하기도 했다.

미국은 끈질긴 조사 끝에 2016년 3월 이 사건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싱이 부인하지 못하도록 입수한 회사 내부 문건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중싱이 이란, 북한, 시리아 등에 미국산 기술 제품을 공급한 것으로 돼있다. 결국 중싱은 작년 3월 모든 혐의를 시인하고 총 11억9200만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미 상무부는 이 중 3억달러의 납부를 7년간 유예하면서 불법 거래와 관련된 임직원 징계를 요구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수출 거래를 금지시킨다는 조항도 달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임직원 징계였다. 중싱은 불법 거래와 관련된 4명의 고위 임원은 퇴직시켰지만, 35명의 직원에 대해서는 보너스 감봉 등 징계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징계를 했다고 허위 진술도 했다. 미 상무부는 제재 명령서에서 "중싱은 미국의 법 규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며 "믿을 만한 미국의 거래 상대방이 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썼다.

중싱은 지난해 세계 특허 출원 건수 2위를 기록한 중국의 대표 기술 기업 중 하나다. 이런 기업이 남의 나라 법 규정을 이렇게 우습게 본다면, 다른 중국 기업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입만 열면 시장 개방과 국제사회 규칙 준수를 외쳐도 국제사회가 중국과 중국 기업을 믿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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