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확성기 철거 날, 서해선 北주민 향해 '쌀 담긴 페트병'

입력 2018.05.02 03:00

北인권단체들, 강화도서 행사… 페트병엔 구충약·USB 등 담겨
"정상회담 음식 맛나 보이던데… 그 시각에도 北주민 굶어죽어… 北인권 언급 안한건 슬픈 일"

1일 낮 12시 40분 인천 강화도 해안가. 북한 인권 단체 회원 수십 명이 바다 쪽으로 페트병 수백 개를 연달아 던졌다. 페트병엔 각각 쌀 1㎏과 USB(이동식 저장장치)가 들어 있었다. USB엔 한국 예능·시사 방송 영상과 가요 등이 담겼다.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보급품'이었다. 물에 뜬 페트병 700개는 썰물을 타고 바다로 흘러갔다. 3시간 뒤면 북방한계선(NLL), 6시간 뒤면 북한 해안가에 도착한다고 했다. 회원들은 멀어지는 페트병을 보며 "잘 간다!" "흐름이 좋다!"고 외쳤다. 행사에 온 탈북자 신변 보호를 명목으로 경찰 10여 명이 왔지만, 이들을 막지는 않았다.

쌀·USB 등 페트병에 담아 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겠다"고 했다. 이날 군은 대북 방송용 스피커를 철거했다. 그런데 같은 날 민간단체들이 식량과 '외부 정보'를 담아 보낸 것이다. 지난 28일부터 시작된 국제 인권 행사 '북한 자유 주간(週間)' 일정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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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인권운동가 수잰 숄티, 페트병 띄워 보내 - 1일 오후 수잰 숄티(오른쪽) 북한자유연합 대표 등 북한 인권단체 회원들이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의 한 해안가에서 북한으로 보낼 페트병을 바다로 던지고 있다. 페트병 안에는 쌀과 달러 지폐, 남측 드라마가 담긴 USB, 구충제 등이 들어 있다. /연합뉴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는 "이번 정상회담에선 점심 메뉴로 아주 맛난 것이 나오던데, 그 시각에도 북한에선 사람이 굶어 죽는다"며 "우리 행사(페트병 띄우기)는 그런 북한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낮 12시 40분을 택한 것은 이때가 간조(干潮·하루 중 해수면이 가장 낮은 때) 직전이기 때문이다. 이날 이 해안가의 간조는 낮 12시 48분이었다. 한 회원은 "경험상 간조 직전 5~10분에 물이 가장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며 "이때 페트병을 최대한 멀리 던지면 대부분은 서해로 나가고, 그중 30% 정도가 연안·배천 등 북한 해안에 닿는다"고 했다.

페트병엔 쌀과 USB 외에도 구충약, 연고, 미화 1달러 지폐 등이 나눠 담겼다. 미국 달러는 북한 장마당 시장에서 공식 환율의 수십배 가격으로 거래된다. 최근 황해도 출신 탈북자 중엔 이 '페트병 보급'을 받고 생활에 보탰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인권은 보편 문제, 남북 관계보다 중요"

행사에 참석한 인권 단체 회원들은 "북한 인권 보호는 '적대 행위'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문제"라며 "남북 관계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남북 관계가 좋든 나쁘든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자유 주간을 총괄하는 수잰 숄티(59)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정상회담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자행되는 반인류 범죄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던 건 전 북한 주민뿐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인권 변호사였던 분(문 대통령)이 그것(인권 문제)을 잊은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북한 주민도 한국인과 미국인이 향유하는 권리를 똑같이 누릴 자격이 있다"고 했다.

북한 인권 단체들은 오는 5일엔 풍선을 이용해 북한에 대북 전단을 날릴 예정이다. 전단엔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남북 정상) 합의 취지를 고려해, 민간단체들도 대북 전단 살포 중단에 적극 협력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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