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우리 삶과 죽음은 습자지 한 장 차이"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5.02 03:00

    손 없는 색시

    어느 날, 색시의 두 손이 달아났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색시의 두 손은 "눈물 닦고 가슴 치는 건 그만두겠다"며 팔에서 뚝 떨어져 나가 도망쳐 버렸다. 설상가상 색시가 낳은 유복자는 어미 배 속에서 슬픔만 먹고 큰 탓에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색시는 아기와 함께 자신의 손을 찾아 파란만장한 모험을 떠난다.

    '손 없는 색시'(연출 조현산)의 무대는 신비롭다. 판타지 성격이 강한 민담에서 따온 이야기를, 배우와 인형이 함께 연기하는 복합 인형극 그릇에 맛깔나게 담아냈다. 반쯤 눈을 감은 듯한 크고 작은 인형들 얼굴은 무대 위에서 금세 배우 얼굴과 어우러지며 하나로 합쳐진다. 환각에 가까운 일체감이다. 천장에 매달린 소품이 편지나 선물 상자로 변하고, 인간의 악행으로 고통받는 땅은 무대를 꽉 채운 에어바운스로 표현된다.

    어린 색시와 늙은 아기가 잃어버린 손을 찾으러 가는 길에 훼방을 놓는 살구밭 주인(큰 얼굴 인형).
    어린 색시와 늙은 아기가 잃어버린 손을 찾으러 가는 길에 훼방을 놓는 살구밭 주인(큰 얼굴 인형). /예술무대 산
    전통연희 극작으로 재능을 인정받아 온 '운현궁 로맨스' 극작가 경민선이 대본을 썼다. 간결하고 경쾌한 대사가 일품. 어둡고 무거울 뻔한 이야기를 광대놀이 같은 풍자와 농담으로 감싼다. 전사한 남편을 끌어안고 "아이고, 머리에 '도레미파솔라시도' 총구멍이 8개나 뚫렸네" 하며 웃음을 일으키는 식이다.

    주인공이 엄마나 여인도 아닌 색시인 것도 상징적. 색시는 아이를 낳거나 먼 여행을 떠나기에 어리숙하고 모자란 존재다. 그 어린 색시와 늙은 아기의 여정은 늘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삶을 닮았다.

    우리 연극의 뿌리 같은 장소인 서울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인형극이 오르는 건 처음. 조현산 연출은 "삶과 죽음은 희극과 비극처럼, 얇은 습자지 한 장만큼의 차이로 붙어 있다. 그 아이러니를 한판 굿처럼 관객이 즐겁게 마주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공연은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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