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 쉬지 못하고 수당도 못받는 근로자들

  • 뉴시스
    입력 2018.05.01 09:50 | 수정 2018.05.01 09:52

    출근하는 사람들
    올해로 회사 다닌 지 6년째가 된 김정수(33)씨는 매년 찾아오는 '근로자의 날'에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김씨는 1년 중 하루 덜 쉬면 어떠냐고 속으로 마음을 다잡지만 올해처럼 징검다리 연휴를 만들 수 있는 날이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어디로 놀러갈지 계획을 세우는데, 나는 회사에 나가서 업무에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일할 맛이 안 난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5월1일 근로자의 날은 법정 공휴일이 아닌 유급 휴일이다. 당일 직장에 출근해 일을 한다고 해서 고용주가 불법 행위를 하는 건 아니다.

    김씨도 이 같은 내용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노동자인데, 누구는 쉬고 누구는 못 쉰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출근을 하면 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6년 동안 수당은 구경도 못해봤다. 근로자의 날은 유급 휴일이기 때문에 일을 한 노동자는 통상 임금의 50%에 해당하는 수당을 더 받을 수 있지만,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당연하다는 듯 수당을 주지 않는다.

    김씨는 "근로자의 날에 어차피 쉬어본 적이 없으니까 별 생각 없이 출근하긴 해요. 그런데 버스를 타면 딱 알죠. 평소보다 출근하는 사람이 확연히 적거든요. 일하러 가는 사람들 보면 동질감 같은 걸 느껴요. '그래 너네도 고생이 많구나.' 뭐 그런 생각이요. 노동자이긴 한데 노동자가 아닌 것 같은 이상한 상황이죠"라고 말했다. 직장인 8년차인 오진선(31)씨도 김씨와 다르지 않다. 이번이 세 번째 직장인 오씨는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앞서 몸담았던 두 회사에서도 근로자의 날에 쉬지 못했고 수당도 받지 못했다. 오씨는 "다른 사람들이 다 쉰다고 생각하면서 출근하면 능률이 많이 떨어져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럴 거면 왜 출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근로자의 날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토로했다.

    매년 근로자의 날이면 터져 나오는 불만이지만, 대안은 나오고 있지 않다. 관련 기사들에는 "머슴의 날은 없나요? 그래야 쉴 듯" "누군 쉬고 누군 못 쉴 바에 차라리 없애라" "모두가 쉬지 못하는 근로자의 날은 불공평하다"는 자조 섞인 댓글이 줄을 잇는다.
    김씨나 오씨처럼 많은 회사원이 근로자의 날에 쉴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사정상 출근하고, 일을 하더라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 고용주가 50%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근로기준법 56조와 109조에 의거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지만,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장 근로자가 5명 미만인 경우, 근로자의 날에 일을 하더라도 고용주가 통상 임금의 50%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이해하기 힘든 기준도 있다.

    '근로자'라는 기준 또한 모호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은행·보험사·카드사·증권사 등 금융기관 종사자는 모두 근로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업무를 하지 않는다. 택배 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쉬지 못한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 정상 출근한다. 우체국과 학교는 공익 성격도 있지만 구성원이 근로자가 아닌 공무원이기 때문에 정상 운영된다. 병원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지만 사기업이라서 병원장 재량에 따라 쉬거나 진료를 하며, 종합병원의 경우 근로자의 날에도 동일하게 진료한다. 이처럼 직장에 따라 제각각인 근로자의 날에 대한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일부 직장인은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전격적으로 실행에 나서는 '주 52시간 근무' 체계에 대해서도 불신을 드러낸다. 근로자를 위한 날도 사정이 이러한데 정부가 현행보다 대폭 단축되는 근무 시간에 대해 피고용자들의 권리 행사를 적극 지켜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7월1일부터 근로 시간이 단축되고,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52시간 체제'가 적용된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과 일부 특례 업종은 예외다.

    근로자의 날처럼 대기업의 경우 유연하게 대책을 세워나가겠지만, 중소기업 등 작은 회사들은 근로시간 단축 혜택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니냐며 '상대적 박탈감'을 우려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휴일에서도 묘한 빈부 격차가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5년차 직장인 정재훈(35)씨는 "근로 시간 단축은 법으로 지정한 것이어서 대체적으로 지켜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근로자의 날처럼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노동자가 없게끔 정부가 철저히 감독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차 직장인 이보라(34)씨도 "누구는 적용받고 누구는 적용받지 못하는 상황은 절대 없어야 한다"며 "모호한 기준은 근로자의 날로 족하다"고 말했다.
    남정수 전국민주노동총연맹(민주노총) 대변인은 "근로자의 날이 법에는 유급 휴일로 정해져 있지만 온전히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건 법이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회사는 단 하루 유급휴가 받고 정당하게 쉴 수 있는 날을 보장해야 하며, 정부는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게 적극적으로 관리·감독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5인 미만 영세 기업엔 근로자의 날은 물론 근로기준법 자체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며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겠지만, 근로자의 날이든 근무 시간 단축이든 어떤 구분도 없이 1인 이상 사업장에는 똑같이 법을 적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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