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엔 마늘, 컬링? 100년 교회도 30개 있죠"

입력 2018.04.27 03:01

지역 계몽과 발전 앞장 선 교회들… 유치원·학교 만들어 교육에 나서
경북 지역 3·1운동 이끌기도 "의성에선 교회 일이 곧 마을 일"

"의성에 마늘, 컬링만 있는 게 아닙니다. 100년 넘은 교회가 자그마치 30개나 있답니다."

철파교회 추성환 담임목사의 말에 솔깃해 경북 의성을 찾은 건 지난 21일이다. 객관적 조건만 보면 의성은 개신교 전도에 유리한 편이 아니다. 100년 전 서울, 평양, 광주처럼 외국 선교사들 거점도 아니었고, 유교적·보수적 색채가 강한 고장이었다. 그런데 인구 5만4000명 정도인 의성에 교회가 150곳, 그중 100년 역사를 가진 곳이 30개란다. 국가대표 컬링팀 김영미·경애 자매가 주일학교 때부터 출석하는 철파교회는 1964년 설립돼 반세기가 넘었지만 의성에선 '젊은 교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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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교회’담임목사들이‘오직 예수’라 적힌 의성교회 100주년 기념비 앞에 함께 자리했다. /김한수 기자
의성에서 만난 쌍계(1903년 설립·서보율 목사), 하령(1904·심창석), 창길(1904·장헌수), 의성(1908·남세환), 양지(1911·박일서), 옥산(1913·정태현), 장림(1913·박치범), 도리원(1914·손성욱) 등 100년 교회의 목사들은 "골짜기마다, 마을마다 교회가 있는 곳이 의성"이라며 "우리가 봐도 특별하다"고 입을 모았다.

의성의 첫 교회는 1900년 설립된 비봉교회. 개신교 전래 과정이 흥미롭다. 이 마을에 살던 김수영이 청도 장터에서 전도사 이야기에 감동받아 미국 출신 베어드(한국명 배위량·1862~1931) 선교사에게 세례 받고 돌아와 마을 주민들과 예배를 드린 것이 비봉교회의 시작이다. 비봉교회에 출석하던 여신도가 옥산면으로 출가해 시댁에서 예배를 드리다 1903년 설립된 것이 실업교회이고, 처가가 있던 비봉 마을을 왕래하면서 신앙을 갖게 된 교인이 1908년 읍내에 세운 것이 의성교회다.

의성 최초의 교회인 비봉교회 전경.
의성 최초의 교회인 비봉교회 전경.
의성에서 개신교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로 작승교회 김병준 목사는 "신앙 선배들이 삶에서도 모범을 보인 덕분"이라고 했다. 비봉교회가 설립 직후 '계신학교'를 열었고, 의성교회가 1920년대에 '숭신유치원'을 여는 등 지역 계몽과 발전에 앞장섰다. 경북 지역 3·1운동이 의성 교회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는 점도 큰 자부심이다. 1930년대 말 기독청년들이 농촌계몽운동에 나섰다가 일제에 탄압받은 '농우회(農友會) 사건'도 의성이 중심이었다. 일제는 당시 의성교회 유재기 목사 등을 체포하면서 신사참배에 반대해온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1897~1944) 목사를 이 단체와 연루됐다며 체포해 의성경찰서에서 7개월간 옥고를 치르게 했다. 옛 의성경찰서 건물은 예장합동교단 역사 사적지로 지난달 지정됐다.

100년 넘은 교회가 즐비하니 에피소드도 많다. 4~5대 후손이 출석하는 교회가 드물지 않고, 외지에 나간 신자나 후손들이 교회 살림에 보태라고 헌금도 보내온다. 교회 일이 곧 마을 일이다. 비신자 주민들도 부활절, 성탄절이면 '부조'하듯 헌금하고, 새벽기도 종소리가 울리면 신자들은 교회로, 비신자들은 논밭으로 나간다.

물론 고민도 많다. 교인들의 고령화와 재정적 어려움이 크다. 그래도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철파교회는 교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방이(트램펄린)'와 해먹을 설치해 주일학교 학생들을 30여 명으로 늘렸다. 장림교회 박치범 목사는 가정에서 양육이 어려운 아이들 4명을 위탁받아 교회에서 돌봤다.

비봉교회에 세워진 '선교 100년 기념비'에는 "돋는 해 지는 달 세월이 흘러 춘풍추우(春風秋雨) 어언 100년. 여기 높이 기념비를 세워 제막하니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이니이다"라 적혀 있다. 의성교회 100주년 기념비엔 '오직 예수'가 새겨져 있다. 의성 교회들이 한 세기를 이어온 저력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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