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을 환영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검증이 필요하다. 사찰단 수용 여부가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카드다.” -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
4·27 남북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24일 국제관계 석학들이 서울에서 모여 북핵 해법과 남북·미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격동기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는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아산플래넘 2018’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에 있어서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타인버그 전 부장관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단을 받아들이고 북한 내 핵실험장을 검사해 핵개발이 중단됐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 개발을 중단한다고 해도 북핵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핵을 만들 수 있는)역량은 그대로 남아 있다. 장거리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개발하려고 시도하지 않는지도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김정은이 선언한 풍계리 폐쇄는 비핵화 과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며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안으로 검증을 꼽았다. 그는 특히 핵시설 보다 핵무기 자체에 대한 검증을 제안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주요 무기에 대해 IAEA의 사찰을 받는다면 비핵화의 첫번째 발걸음이 될 것”이라며 “북한으로선 보유한 핵무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국제사회에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 한국과 미국엔 북한이 공개한 핵무기를 폐기함으로써 일부 핵무기에 대한 불가역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재래식 병력에 대한 감축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핵무기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무기도 한반도 평화의 위협 요소”라며 “남북 모두 병력을 50만명 수준으로 줄이자는데 합의한다면 전쟁 위협도 그만큼 줄어든다”고 했다.
빅터 차 석좌는 “수년간에 걸쳤던 남북간 관계와 양상을 살펴보면 별로 새로운 것은 없다”며 현재 북한의 태도가 예전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차 석좌는 “한국에 와보니 미국과는 달리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하는 느낌”이라며 “북한의 입장은 아직 예측할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남북정상회담의 결과가 이후 미북정상회담의 직접적인 예고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미북정상회담에서도 특별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차 석좌는 특히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정부간 사전 조율이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실제로 성과물을 얻어내기 위해선 기초적인 사전작업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사전 조율 없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선언만 이뤄지는 것은 좋은 결과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정상회담은 가장 마지막 단계로 정상들이 만나 협상을 마무리하고 결론을 짓는 것”이라며 “이같은 (사전)작업 없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올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차 석좌는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한미동맹’을 주제로 한 세션에선 “이번 회담이 너무 빨리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면서 “협상의 실패가능성도 있다. 정상에 올라선 다음 잘못되면 절벽으로 떨어진다”고 경고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 설립자인 에드윈 퓰너 전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강한 개성을 차후 열릴 북미정상회담의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정권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퓰너 전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모두 성격이 강한 사람들”이라면서 “두 사람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이번 회담은 변수가 상당히 많다”고 했다.
퓰너 전 회장은 트럼프의 협상가적 기질에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는 “트럼프는 워낙 타고난 협상가로, (자신이)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론 회담장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절대적으로 만족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 검증가능하며, 즉각적으로 시행가능한 솔루션이라는 목표를 갖고 회담장에 나갈 것”이라고 했다.
퓰너 전 회장은 또 “북한이 완전한(totally) 비핵화만 한다면 다양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체제가 세워질 수 있다. 새로운 게임 판도가 만들어진다”며 “이 기회를 잡게 된다면 북한은 문명국가로 인정받고 국제사회에서 환영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완전한 비핵화만 된다면 (미국과 한국 등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인프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며 “광산채굴업, 고속철로 건설 등 북한과의 협업을 기대하는 이해관계자가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