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탄 맞은 바둑계, 빠른 진상 규명이 살 길이다

입력 2018.04.24 03:00

[화요바둑]

'미투' 폭로 1주… 도처에 후유증, 예절 내세워온 이미지 급추락
한국기원 선제적 대응 나서야 "당사자 결자해지 정신 필요"

한 외국 출신 여성 기사가 온라인 기사 연락망을 통해 중견 프로 김성룡 9단을 성폭행 혐의자로 고발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바둑계는 처음 겪는 충격적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사태 앞에서 엄청난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바둑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하고 있지만 사태의 본질은 아직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바둑계는 지난주 도처에서 '미투 후유증'에 시달렸다. 기원 재정의 '젖줄' 격인 기전 스폰서들부터 동요했다. 한국기원은 국내 최대 기전인 한국바둑리그 후원사의 강력 항의에 진땀을 빼야 했다. 일부 매체가 김 9단의 바둑리그 관련 이력을 보도하면서 후원사 이름까지 노출한 것을 문제 삼은 것. 하지만 항의의 진짜 표적은 바둑의 이미지 실추로 인한 홍보 역효과였다는 점에서 다른 기전들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지난주 터진 미투 사태 이후 바둑계가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3월 한국기원서 열린 이세돌―알파고 대결 4국 해설회 모습.
지난주 터진 미투 사태 이후 바둑계가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3월 한국기원서 열린 이세돌―알파고 대결 4국 해설회 모습. /고운호 기자

일선서 활동 중인 바둑 교사들도 후유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바둑이 수천 년 동안 강조해 온 최고의 덕목은 예절과 인성 함양인데, 이것이 무너지면서 냉랭해진 수요자들의 반응이 감지된다는 것. 이번 사건은 폭로 다음 날 중국의 한 인터넷 매체가 자세한 내용과 함께 김 9단의 대형 사진까지 싣는 등 국제적 망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둑계 주변 인사들은 사건의 진상을 최대한 빨리 규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바둑계의 공멸을 막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이 고발자와 바둑계 전체, 그리고 피고발자에게도 최선의 수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의혹의 시간이 길어져 소문과 추측이 쌓일수록 모두의 상처만 더 커질 뿐이란 얘기다.

한국 바둑의 총본산인 한국기원의 대처 능력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크고 작은 바둑계 '미투'가 쏟아진 지 한 달이 가까워 오지만 한국기원이 선제적으로 개입해 해결한 것은 한 건도 없다. 매번 위원회를 신설하고 '엄정 대처키로 했다'는 원칙론만 앵무새처럼 반복해 왔을 뿐이다. 이번 사건만 해도 표면화되기 전 이미 기가(棋街)에 소문이 나돌았으나 애써 외면하다 여기까지 왔다.

지난 주말엔 여성 기사 50여명이 연명으로 '조속한 진상 규명과 조처'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상당수 남성 기사들도 개별적으로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최근 기사 사회를 들여다보면 양성(兩性) 간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도 자주 눈에 띈다. 남녀가 한 운동장서 동등하게 겨루는 종목은 바둑이 거의 유일하다. 이번 사태로 성별 간 반목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이 또한 막아야 할 바둑계 '2차 피해'다.

바둑은 조화(調和)의 게임이다. 그리고 형세 판단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종목이다. 억울한 점이 있으면 속히 해명하고,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짐으로써 결자해지해야 한다. 한국기원도 범을 잡으려면 범굴에 뛰어들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바둑계 전체가 초읽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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