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경기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실을 22일 압수수색했다. '드루킹' 김동원(49)씨가 인터넷 카페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회원들과 댓글 조작을 한 곳이다. 지난달 21일 압수수색을 하며 김씨 등을 체포한 지 한 달 만이다. 그동안 이 사무실엔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지난 21일엔 좀도둑이 양주 2병과 라면을 훔쳤다가 경찰에 잡혔다. 이 절도범은 스스로 전직 경공모 회원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번 사건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지난 13일엔 출판사 직원이 트럭을 가져와 서류를 쓸어 갔다. 그런 곳을 경찰이 증거를 추가로 확보하겠다며 한 달 만에 다시 압수수색한 것이다. 경찰도 댓글 조작 기사목록이 담긴 USB(이동식 저장장치)는 이미 폐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공모'보다 느린 경찰 수사

경찰은 22일 낮 12시쯤 출판사 사무실에서 약 1시간 30분 동안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물을 담은 박스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경찰은 "건물 안팎에 있는 방범카메라 영상과 주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고, 사무실에선 USB 1개를 추가 확보했다"고 했다.

22일 ‘드루킹’ 김동원(49)씨가 운영하던 경기 파주시 느릅나무 출판사 앞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경찰은 이날 낮 12시쯤 출판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방범카메라 영상과 주변 차량 블랙박스 영상, USB 1개를 확보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은 지난달 21일에 이어 두 번째다. 경찰이 사무실을 방치한 한 달간 경공모 회원들이 증거를 빼돌렸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무실은 '드루킹 게이트'의 실체를 밝혀 줄 핵심 장소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았다. 흔히 사건 현장에 두르는 경찰의 '출입 금지' 테이프도 없다. 22일 경기도 일산에서 왔다는 김모(52)씨는 "역사적인 사건 현장을 직접 보러 왔는데, 테이프 하나 둘러놓지 않아 이상하다"고 했다. 사무실 앞엔 전날 절도 사건 이후 경찰차 한 대가 배치됐다.

경찰은 "지난달 21일 '드루킹' 검거 후 사무실을 드나든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주변 건물 방범카메라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본지가 지난 16일 주변 건물 관리인의 동의를 받고 방범카메라를 살폈을 때, 지난달 21일 이후 찍혀 있는 영상이 없었다. 이 건물 주인은 "(누군가 방범카메라) 셋톱박스를 건드리면서 (연결선이) 빠진 거 같은데, 불도 안 들어와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압수수색 때는 녹화돼 있는 방범카메라 영상이 없었다. 혹시 삭제된 영상이 복원 가능한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증거는 복구 어려워

드루킹의 범죄는 인터넷이 핵심 무대다. 그러나 경찰은 인터넷 증거 확보를 제대로 안 했다. 경찰은 지난 20일 '경공모'와 '경인선(드루킹 주도 모임)' 등 네이버 카페 3곳의 게시글과 댓글, 가입자 정보 등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그러나 '디지털 증거'들은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됐다.

22일 오전 '경공모'와 세이맘(주부 모임) 인터넷 카페가 폐쇄됐다. 드루킹은 세이맘 카페를 통해 자신들이 만든 비누 등을 팔았다. 드루킹 개인 블로그에서 '세이맘' 관련 내용도 삭제됐다. '경인선' 블로그 게시글은 수시로 수정되고 있다. 이런 디지털 증거들은 복구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글은 네이버가 관리하는 전산 데이터베이스(DB)에 기록된다. 카페와 블로그 관리자·회원이 올린 글을 삭제하면, 전산 DB에서 일정 기간 후 지워진다. 글이 삭제되면, 그 자리에 새로운 글들이 덮어씌워진다. 한국포렌식학회장을 맡고 있는 노명선 성균관대 교수는 "네이버같이 사용자가 많은 DB에서 글이 삭제됐다면, 한 달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자료는 사라져 복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반복되는 경찰의 뒷북 수사

경찰 수사팀이 김경수 의원의 발언을 의식해 움직이는 듯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21일 수사팀에 6명을 추가 투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기존 13명에서 30명으로 늘린 지 나흘 만에 또 확대한 것이다. 앞서 이날 오전 김경수 의원은 자신의 보좌관과 드루킹 간 금전 거래가 폭로된 후 "경찰은 드루킹 수사 내용을 찔끔 흘리지 말고 신속하게 수사하라"고 했었다.

경찰은 대선 전 드루킹의 조직적인 '댓글 활동'에 대해서도 수사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한 댓글 조작이 아니라도, 당사자 동의 없이 아이디(ID)를 활용해 댓글 추천 수를 늘린 것은 불법"이라며 "드루킹이 작년 대선 전에 했던 댓글 활동도 처벌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