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역설의 국제정치학

  •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입력 2018.04.22 05:50 | 수정 2018.04.22 06:42

    지난 3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반도 비핵화, 조건 없는 북·미대화 촉구 3·24 평화촛불집회’. photo 뉴시스

    “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쟁은 흔히 발생한다. 미국의 노만 카즌스 기자는 1950년대 ‘토요 리뷰(Saturday Review)’라는 유명한 기사에서 인간의 역사에는 약 1만4500회 정도의 전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학술적 엄밀성으로 이 글을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정말로 수많은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전쟁에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는 어쩐 일인지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급 정치가들도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믿고 있다. 평화를 거의 절대적인 선(善)으로 착각하고 있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면 평화유지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하는 일이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라고 믿는 정치가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혹시 이웃나라의 식민지가 되는 일은 ‘아무리 나쁜 평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인가 아닌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대응해서 싸우게 되면 그것은 전쟁이 될 터인데, 그것보다는 북한에 항복하는 것, 그래서 한반도 전체가 북한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북한 체제 아래에서 살게 되는 것도 나쁜 평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가?

    설마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대단히 좋은 방법들이 몇 가지 있다. 세상 모든 나라와 평화조약을 맺는 일이다. 예컨대 북한과도 평화조약을 체결하면 평화가 이뤄졌으니 주한 미군도 철수시키고 군대도 해체하면 될 것이다. 군대가 없으면 아예 전쟁을 할 엄두조차 낼 수 없으니 그야말로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시비 거는 식으로 말해서 미안하지만 ‘아무리 나쁜 평화’라는 무책임한 말들을 국가의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막 해대는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평화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상태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폭력이 없는 상태라도 자유와 빵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할 수 없다. 미국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을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본받아야 할 금언(金言)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미국 국민들이 건국 초기 세계 초강대국 영국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할 일이 무서워서 식민지 상태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었다면 오늘날 미국과 같은 대단한 나라는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노예 상태로 살기보다는 자유를 위해서 전쟁을 각오할 수 있다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우리는 주변국 어느 나라의 노예도 될 수 없고, 특히 북한 김씨 왕조의 통치하에 사는 것보다는 그들과 일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2차대전 중인 1939년 8월 히틀러와 스탈린이 체결한 독·소불가침조약 서명식.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로마인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전쟁을 잘 준비한 나라, 전쟁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나라라야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전쟁을 하지 않은 채 맞이했었다. 당시 조선이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거나 혹은 고종 황제가 온 조선 국민들과 함께 옥쇄를 각오하고 일본과 일전불사의 결의를 보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2차대전 직전 영국의 처칠 총리는 전임 총리의 비겁한 대(對)독일 정책 때문에 전쟁 준비를 채 갖추지 못했던 영국을 이끌어간 영웅이다. 당시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어야 한다는 비겁한 영국 정치가들에게 처칠은 “전쟁에 패망한 국가는 다시 살아날 수 있어도 항복한 나라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말을 던졌다. 처칠의 이 말은 국제정치사에서 반복되는 진리다. 국제정치는 “전쟁을 준비하고 각오할 때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이 항상 통용되는 영역이다.

    사실 국제정치의 영역은 전쟁과 갈등의 영역이다. 평화협정이 없기 때문에 국가들이 다투는 것이 아니라 다투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국가들은 진정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때때로 국가들은 싸울 이유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평화협정을 맺는 경우가 있다. 1939년 영국 총리 체임벌린과 독일의 히틀러 사이에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독일과 뮌헨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돌아온 체임벌린 총리는 비행기에서 내린 후 마중 나온 영국 국민들에게 히틀러의 사인이 들어간 종이 쪼가리를 흔들며 “이 시대의 평화올시다”라고 외쳤다. 히틀러의 야욕을 종이 한 장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결코 영국의 총리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이어야 했다.

    역사에는 만약(If)이라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만약 체임벌린이 그 당시 영국 총리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2차대전이 발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또 발발했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처절한 전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전쟁사가(戰爭史家·military historian)들의 평가다. 체임벌린과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시간을 번 히틀러는 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건설할 수 있었다.

    독·소불가침조약의 허망한 결과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와 스탈린이 체결한 독·소불가침조약은 평화협정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최고의 사례다. 1939년 8월 22일 모스크바로 날아간 독일 외상 립벤트로프는 소련과 독일이 앞으로 100년 동안 상호 침략하지 말자는 히틀러의 독·소불가침조약 제안을 스탈린에게 전했다. 스탈린은 10년 동안의 불가침조약이라도 충분하다며 이에 응했다.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독일은 마음 놓고 서유럽 국가들을 유린해도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서유럽을 장악한 히틀러는 1941년 6월 22일,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은 지 꼭 1년10개월 만에 300만대군으로 소련을 향해 진군했다. 1941년 6월 22일부터 1945년 5월 5일 독일이 항복할 때까지 소련의 군인과 국민들 2000만명 이상이 죽었다. 스탈린이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처참한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평화협정 혹은 평화조약 중 가장 강력한 형태가 ‘불가침조약’인데 역사는 불가침조약을 맺은 나라들이 전쟁에 빠져들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오히려 더 높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영국과 독일의 평화협정,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협정이 모두 다 국제정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거짓이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사실 싸울 이유가 없는 나라들은 평화조약이 없어도 전쟁을 하지 않는다. 한국이 필리핀, 멕시코 같은 나라들과 평화협정을 맺지 않아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 한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그것은 체임벌린과 히틀러가 맺었던 것과 비슷한 평화협정이 될 것이다. 남북한의 실제 관계, 특히 핵무장한 북한의 의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문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웃기는 평화협정은 1928년에 체결된 미국 국무장관 켈로그와 프랑스 외무장관 브리앙이 체결한 켈로그-브리앙조약(부전조약)이란 것인데 이 조약은 모든 전쟁을 불법(不法)이라고 선언했다. 1939년에 이르기까지 63개국이 이 조약에 가입하였으며 당시 세계의 주요국가 모두가 가입했고 조약의 발기자인 켈로그는 192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이 조약은 공식적으로 폐기되지는 않았으니 1928년 이후 오늘까지 90년 동안 일어난 전쟁은 모두 ‘불법’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전쟁을 하겠다고 결심한 나라들이 법을 지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국제법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면 왜 국가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 퍼붓고 있는 것일까?

    ‘전쟁이냐, 평화냐’는 어리석은 질문

    최근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추진하기 위한 국민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평화협정 서명을 받는 ‘일꾼’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좋아요? 전쟁이 좋아요?”라고 묻고 “평화가 좋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데 서명하라”고 요구한다. 서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당신 이게 뭔지 알아? 미군 나가라는 소리 아니야!”라며 버럭 소리치는 어떤 중년 남성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대단히 어이없고 부질없는 일이 진행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같은 행동이 어이없는 행동인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해 보겠다. 첫째, “평화가 좋아요? 전쟁이 좋아요?”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전쟁과 평화는 반대 개념이 아니다. 전쟁은 수단이고 평화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해 때로는 전쟁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앞에서 논했지만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고 믿는 사람들은 앞으로 이완용을 평화주의자라 불러야 할 것이다. “평화가 좋아요? 전쟁이 좋아요?”라는 질문에 “전쟁이 좋다”고 말할 인간이 어디 있을까? “북한이 통일해도 좋아요? 김정은 밑에서 살 수 있어요? 전쟁이라도 해서 그런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을 막는 게 좋을까요?” 혹은 “전쟁은 결코 안 되는 일일까요?”라고 다시 물어보라.

    둘째, 문제는 평화협정을 맺어도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앞에서 말한 영국과 독일의 평화조약,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 그리고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켈로그-브리앙조약 등을 보라. 국제정치의 역사 속에는 평화협정, 혹은 평화협정보다 더 확실한 상호불가침 협정이 대단히 많았다. 이런 조약을 맺고 평화가 올 줄 안 멍청이들도 있었고 덕분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평화조약으로 다가오는 전쟁을 막은 사례는 없었다.

    셋째,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서명 받으러 다니시는 분들 혹은 그 일을 지시하시는 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이 우리의 선의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갖추는 일이다. 만약 우리 국민 수천만 명이 평화협정을 원한다는 서명을 해서 김정은에게 내밀면 김정은이 한국 국민의 호소에 감동을 받아 평화협정을 체결해줄까? 아마도 김정은은 주한미군이 존재하고 있고 한·미동맹이 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평화협정이냐고 말할 것이다. 한·미동맹을 철폐하고 주한미군을 몰아낸 후 그때 평화협정을 맺자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원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는 일이다.

    북한과 이미 맺은 숱한 ‘평화협정’들

    넷째,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에 연연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미 남북한 사이에는 국제정치 역사에 나타났던 평화조약 혹은 불가침조약 못지않은 양호한 평화조약, 불가침조약이 이미 여러 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끝내주는 평화협정이 존재하고 있는데 왜 다시 평화협정을 작성하고, 일일이 국민의 사인을 받는 고생을 하는지 알 수 없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한 양측이 합의한 기본합의서는 세계 역사상 어떤 평화조약보다도 내용이 포괄적이고 성실하다. 1992년 2월 19일부터 발효하기 시작했으니 25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평화협정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남북한은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아니한다’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남과 북은 현 정전 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 등의 약속을 했다. 특히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까지 약속했었다. 더 나아가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는 약속도 들어 있다. 이것보다 더 좋은 평화협정이 어디 있으며, 이것보다 더 좋은 불가침협정이 앞으로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남북한은 기본합의서보다 더 구체적인 비핵화 선언도 했다. 남북한은 1991년 12월 한반도 핵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세 차례의 남북 고위급회담을 가진 후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하여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자’는 공통된 취지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전문과 6개항으로 된 ‘비핵화 공동선언’은 1991년 12월 31일 채택된 뒤 1992년 2월 19일 제6차 고위급회담(평양)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함께 발효됐다. 하도 내용이 좋아 길게 인용한다.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配備),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4.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 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5. 남과 북은 이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공동선언이 발효된 후 1개월 안에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6. 이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본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서명하라는 말에 분노하는 중년 남성의 동영상을 본 이야기를 했다. 그분 말씀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목적이 남북한 간 평화협정을 통해 미군을 몰아내고 한·미방위조약을 폐기시키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진정으로 통일과 평화를 원한다면 항상 북한을 싸고돌며 조국의 통일을 앞장서 방해하고 있는 외세인 중국을 향해 그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6·25 당시 중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때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북한이 통일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그리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민주체제로 한반도가 통일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자유민주주의통일,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서 더욱 필요한 것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북한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막강한 힘이다. 그 막강한 힘에 포함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한·미동맹인 것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