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연 11억원을 대준 錢主가 누구냐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8.04.20 03:17

    "경찰은 소리 소문 없이 드루킹을 구속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현 정권 의도를 번번이 훼방 놓는 것처럼 이렇게 '게이트'로 갔다"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현 정권은 남북 정상회담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세간에서 정작 궁금해하는 것은 '드루킹 게이트'다. 출판사 사무실을 얻어 휴대폰 170여대로 댓글 조작을 해오던 그의 일당에게 연 11억원을 대준 전주(錢主)가 누군지를 알고 싶어 한다. 청와대가 "우리는 피해자"라며 정상회담 쇼로 판을 옮겨보려 해도 바닥 민심은 안 따라갈 것이다. 이 사건이 너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수사 의뢰로 이 사건이 시작됐다는 점부터 묘하다. 그는 '평창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폭주하는 비판 댓글을 보수 진영의 공작으로 본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의 추한 얼굴을 드러낼 기회였다. 이틀 뒤 김어준씨가 자신의 공중파 프로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거나 돈이 개입되거나 조직이 동원돼 뒤에서 누군가가 시켜서 혹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이런 일을 한다면 반드시 엄벌에 처해야"라며 가세했다.

    해바라기처럼 정권을 바라보고 있는 경찰 수뇌부는 이런 신호를 금방 해석했을 것이다. 운 좋게도 드루킹의 출판사 사무실 압수 수색 과정에서 변기에 버리려는 USB(이동식 저장장치)를 수거했고,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조사해보니 현 정권에서 당초 원하던 그림과는 정반대였다. 이럴 때 '제 발등 찍었다'라는 속담이 있다.

    체포된 드루킹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김경수 의원 등과의 관계에 대해 진술을 안 했을 리 없다. 경찰 수뇌부는 고차원적인 정무 판단이 필요했다. 드루킹의 처리 문제를 청와대에 보고했을 것이다. 청와대는 그전부터 드루킹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한때는 음지(陰地)의 지원 세력이었지만 이제 골칫거리가 된 드루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김경수 의원이 포함된 청와대 대책 회의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 뒤 경찰은 소리 소문 없이 드루킹 등을 구속했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이렇게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구속된 지 19일이 지났을 때다. 벌써 유치장에 가 있는 사건을 한겨레신문에서 뒤늦게 알고 보도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현 정권의 의도를 번번이 훼방 놓는 것처럼. 아마 이 신문도 '단순 사건'이 이렇게 '게이트'로 커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선거판에는 '드루킹' 같은 브로커들이 개입하고 불법 공작의 유혹이 있는 게 현실이다. 또 선거가 끝나면 권력 실세에 매달려 자리를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촛불'의 명령으로 탄생했다는 현 정권도 막상 선거 때는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언젠가 깨끗한 얼굴을 하고 뒤로는 더러운 짓 했던 넘들이 뉴스 메인 장식하는 날이 올 것"이라며 드루킹에게 협박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돼왔지만, 현 정권은 '적폐 청산'의 칼을 휘둘렀고 입에는 늘 공정과 정의를 달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이 책임질 일에 대해서는 훨씬 더 엄격해야 하지 않는가. 이번 브로커 사건이 '게이트'가 된 것은 현 정권에서는 아무도 안 다치고 드루킹만 잡아 보내려는 데서 일이 꼬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건이 공개되자 김경수 의원이나 청와대 비서관들은 아귀를 맞추느라 이랬다저랬다 횡설수설하는 모양새가 됐다. 박근혜 정부를 탄핵시킨 이들은 '시인할 것은 시인해야 한다'는 그때의 교훈을 벌써 까먹은 것이다.

    당초 경찰에게 '원칙대로 수사하라'고 지시했으면 불법 정치 브로커와 연결된 정권 실세 한두 명의 처리에서 조기 매듭지을 수 있었다. 국민을 향해 정상회담 팡파르를 터뜨려야 하는 시점에 와서 이렇게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숙 여사까지 연루돼 정권 전체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상황으로 번지는 것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경찰 전체 조직을 망가뜨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경찰이 과연 권력에서 독립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상당수 국민이 의문을 갖게 됐다. 경찰 수뇌부는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책 한 권 출판하지 않는 사무실의 임차료, 댓글 조작에 동원된 20여명의 식대와 경비, 휴대전화 170여대의 비용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범죄 수사의 기본이다. 강연료나 그까짓 비누를 팔아서 마련했다는 것을 믿었던 것일까. 연간 11억원 이상 썼다는 돈의 통로를 드루킹 일당이 체포된 뒤로 한 달 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사건의 열쇠가 바로 거기에 있고, 지금 세간에서는 온통 이런 얘기만 한다. 경찰이 명예를 되찾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면 정권이 허물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세상이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모를 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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