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중년 남자의 외로움을 아는가? - 외로운 독거남 돕는 양천구 ‘나비남’프로젝트

입력 2018.04.19 15:52 | 수정 2018.04.19 16:01

봄바람이 불던 지난 12일 오후 임명권 씨(60)는 서울 양천구 신월3동 주민 센터로 향했다. 동 주민 센터에서 임씨는 다른 ‘나비남’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날 참가한 ‘나비남’들은 주민 센터 주변 청소를 마친 후 부천시 수주삼거리 부근의 야외텃밭까지 함께 걸어가 텃밭에서 두 시간 넘게 상추와 채소 모종을 심었다. 비닐로 덮은 밭에 흙을 파내고서 푸릇하게 어린 상추를 심었던 나비남 임씨에게 오랜만에 흘린 땀은 달콤했다.


지난 12일 부천시 수주삼거리옆 농장 텃밭에서 나비남들이 상추를 심고 있다/ 조인원기자
‘나비남’은 지난해부터 서울 양천구(구청장 김수영)가 50대 혼자 사는 중년 남성들이 외롭게 죽어가는 고독사를 막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로 도움을 받는 멘티(mentee)와 도움을 주는 멘토(mentor)로 구성되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는 의미와 나비효과가 되어 이 프로젝트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이름 붙였다.

월세 27만원 반지하에 혼자 살던 임씨는 지난해 극적으로 구조되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2013년 봄 일하던 중 차에서 떨어지며 팔이 부러졌다. 일 년 가까이 병원신세를 지고 퇴원한 그는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12일 신월 3동 멘토와 멘티로 구성된 나비남들이 거리 청소를 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조인원기자
이혼과 파산신고까지 겹치면서 불운은 계속되었고 지금 사는 반 지하 방으로 이사 온 것이 지난해 11월, 화병이 나서 잠을 못 잤고 세상에 버려졌다는 단절감과 우울증이 겹치면서 좁은 방안에서 소주만 마셨다. 사흘간 소주 43병을 마시고 쓰러진 후 전화벨이 울려도 수화기를 들 힘조차 없었다.

창원 사는 누나가 임씨에게 보낸 택배가 돌아오자 주민 센터에 연락을 했고, 집을 찾아간 주민 센터 직원에게 발견되어 가까스로 구조되었다. “죽음의 고비에서 그분 때문에 살게 되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2주 동안 병원 생활 후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았다고 했다. 임씨는 나비남에 참여하면서 도움을 받던 멘티에서 남을 돕는 멘토가 됐다. 한 달에 1만 5천원을 모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한다.

임씨가 맡은 멘티 조 모씨(51)도 나비남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았다. 조 씨는 지난해 나비남 프로젝트의 하나로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고 편집하는 방법을 배워 자신의 독거남 생활 경험이 녹아있는 스토리의 15분짜리 영화를 직접 제작했다. 감독과 시나리오, 촬영에 출연까지 조씨 혼자 다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경제적 어려움에 쫓겨 좁은 방안에서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때 주인공의 영혼이 나타나 약병의 약들을 대신 먹고 나간다. 그런데 나가기 전 주인공에 대고 하는 대사가 가슴을 친다.



“너는 알량한 자기연민에 빠져서 함께 하려는 사람들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원망만 하는구나. 자신을 죽음으로 모는 네가 안타깝다. 우린 결코 혼자가 아니었어.” 최근 나비남 활동을 하면서 소개받은 푸드마켓에서 일자리를 얻은 조씨는 “주변의 작은 관심들이 한 사람의 생명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임씨는 주변에서 겪은 고독사 현장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혼자 살던 친구가 연락이 없어 찾아갔더니 우편물이 우편함에 싸여있었고 놀라서 문을 따고 들어가니 사망한지 2주가 되어 있었다. 나비남의 한 회원은 “밥을 먹으려다 숟가락을 놓고 생각하니 내 자신이 너무 서글펐다. 혼자 먹는다는 게 서러웠다. 일을 못하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술, 담배만 계속하고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약해졌고 악순환만 계속됐다”며 힘든 시간들을 회상했다.


신월3동 나비남들이 지난 12일 주민센터 앞 골목을 청소하고 있다/ 조인원기자
신월 3동 나비남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안현희 방문복지 팀장은 “우리 사회가 50대 남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하지만 그 나이에 직장을 나오면 일거리가 없다. 여자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중년 남자들이 문제다”

안팀장은 그동안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등에 대한 도움들이 있었지만 50대 혼자 사는 남성들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며 최근 우리 사회에 중년 실업자와 독거남이 증가하면서, 고독사나 자살에 가장 취약한 연령대가 50대 남자라고 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0년 이후 4050대 남성들의 자살 사망자 수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크게 증가했다. 실직과 퇴직의 스트레스가 우리나라 중년남자들에게 그만큼 심하다는 증거다.

이날 행사가 있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신월 3동에서 나비남 업무를 맡고 있는 김강우 주무관은 “이분들이 집밖으로 나오기까지 1년이 걸렸다. 대부분 집안에 외톨이처럼 있기 때문에 처음엔 밖에서 같이 뭘 한다는 건 꿈도 못 꿨다”고 했다.


신월 3동에서 나비남들에게 지급하는 쿠폰, 관내 반찬가게나 슈퍼마켓에서 현금 대신으로 물건을 살수 있다 /신월3동 주민센터 제공
세상과 단절한 채 방에만 있던 혼자 사는 중년남자들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 그들의 자존감을 존중해주어야 했다. 결국 궁리 끝에 동네 슈퍼나 반찬 가게에서 밑반찬, 고기, 과일 등을 살 수 있는 반찬 쿠폰을 만들었다. 월 3만원어치의 쿠폰을 받은 나비남들은 필요한 물건을 사러 밖으로 나왔다. 동에선 쿠폰을 나와서 받아가라며 자꾸 나오게 했고 모임에 나와 서로 얼굴을 보게 했다. 이런 꾸준한 노력 덕분에 이날 모임에선 서로 이름도 알자며 가슴에 명찰을 붙이고, 눈에 잘 띄는 주황색 조끼를 입고 봉사활동을 했다. 조끼 뒤엔 “정이 있는 신월3동 나비남 멘토, 멘티단”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자영업을 하면서 신월 3동의 나비남 멘토로 참가한 권대인(63)씨는 “집에만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야 한다. 우울증 걸린 사람들을 그냥 놔두면 혼자 죽기 밖에 더 하겠나? 그 나이면 누구든 자존심이 세서 나오라고 해도 가진 게 없으면 창피해서 잘 안 나온다. 그래서 이렇게 동 주민센터가 나서서 멘토와 멘티를 연결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 수주삼거리옆 텃밭에 나비남들이 심은 상추들이 자라고 있다. / 조인원 기자
나비남들이 이날 텃밭에 심었던 채소 모종들은 튼튼하게 땅에 박혀 있었다. 푸른 잎이 무성한 상추를 보기 위해서라도 나비남들은 다음 모임 때 텃밭을 다시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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