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미래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굴기(崛起)를 막는 조치를 속속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난 3일 고성능 의료장비, 산업용 로봇, 통신 장비, 첨단 화학제품, 항공우주, 전기차 등 중국의 10대 핵심 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에 들어 있는 1300여 개 품목에 관세 부과 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16일(현지 시각)에는 미 상무부가 중국 통신장비 업체 ZTE에 대해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7년 동안 금지하는 추가 제재 조치를 취했다. 제품 제조에 미국 반도체 등 부품을 25~30% 사용하는 ZTE로서는 미국산 반도체 등을 수입하지 못하게 돼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ZTE는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구현에 필수적 기반 기술인 5세대 통신 기술을 가진 중국 2위, 세계 4위 통신장비 업체다. 미래 첨단산업 분야에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주고받을 수 있는 5세대 통신기술이 필수적이다. 중국이 이런 통신기술을 발전시켜 나가자 미국이 제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이 중국의 첨단산업 분야 기술 도약 싹을 초반부터 자르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당국은 지난달 중국 1위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와 긴밀한 싱가포르 브로드컴의 미국 반도체 업체 퀄컴 인수에 제동을 거는 등 5G 통신기술의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ZTE는 지난해 3월 대(對)이란 수출 금지령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11억9000만달러(약 1조2700억원)를 내기로 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번에 또 추가 제재를 했다. ZTE가 제재 위반에 가담한 임직원을 징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명분에서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ZTE는 임직원을 질책하는 대신 보상을 함으로써 상무부를 오도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조치로 미·중의 무역전쟁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정부가 ZTE와 같은 혐의로 조사해온 화웨이에까지 비슷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위협으로 중국 측은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ZTE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발표된 후 홈페이지를 통해 "18일부터 미국산 수수 수입업자들에게 보증금을 물리는 방식으로 예비 반덤핑 조치를 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 무역대표부(USTR)가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새로운 무역 보복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역시 빅데이터를 이용한 미래산업의 핵심 기반 기술로 중국 정부의 집중 육성 대상이다. USTR은 미국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인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중국에 진출할 때 중국 당국이 기술 이전 강요 등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환율 공격 카드도 빼들었다. 그는 트위터에 "미국은 금리를 계속 인상하는데,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용납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