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세상진찰] 시니어들의 자원봉사가 고령사회를 움직인다

입력 2018.04.18 03:14

도시락 배달, 우울증 환자 돕기… 日 은퇴자 참여 프로그램 발달
그림책 읽기는 기억력에도 도움… 건강한 고령 사회 위해 배워야

도쿄=의학전문기자
도쿄=의학전문기자
75세 일본인 남성 모토씨는 10년 전 건축설계회사에서 정년 퇴임했다. 은퇴 후 연금으로 살아간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도쿄에 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친다. 보수가 없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모토씨는 수업 시간마다 교재와 뉴스 토픽을 가지고 와서 외국인에게 일본을 열심히 알린다. 이메일 문장도 교정해준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에게 뭔가 도움을 주기에 이 시간이 즐겁고, 책임 교사로서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한다.

도쿄에는 은퇴자들이 교사로 참여하는 일본어 수업이 널려 있다. 구(區)마다 10여개씩 운영되고, 구청은 교실을 제공한다. 수업료는 한 달 4번 수업에 1만원 정도다. 일본 말 할 줄 안다고 아무나 일어 교사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문법과 역사 등 420시간 교육을 이수하거나, 외국인 대상 일본어 교사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이 약 18만명이다. 전직 회사원, 공무원, 일반 교사 출신이 많다. 자식을 다 키운 가정주부들이 모여 외국인 주재원 부인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모임도 있다. 5000원만 내면 두 시간 일어로 수다 떠는 '할머니 발룬티어 프로그램'도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8%인 초고령사회 일본에는 건장한 노인도 많기에 시니어들이 참여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곳곳에 깔려 있다. 독거 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대신 쇼핑을 해주는 일,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전화를 돌리는 프로그램, 병원이나 보건시설에서 휠체어 환자를 밀어주는 봉사도 시니어들이 한다. 우울증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표시하는 '경청 봉사'는 노인 심리와 대화법 교육을 받은 시니어들이 한다. 집에만 있는 노인을 각종 취미 행사에 이송시켜 주는 '사람 다리' 봉사도 시니어 몫이다.

이들은 급발진·급제동 안 하는 노인 탑승 차량 공인 운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떤 이는 손을 쓰지 못하는 노인이 부르면 편지나 문서를 대신 써주는 봉사를 하고, 어떤 이는 시력을 잃은 사람이 읽고 싶은 책을 알려오면 도서 낭독 녹음실에 들어간다. 일본 노인의 80%는 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 있지 않고 집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이들이 노인을 노인이 돕는 노·노(老老) 케어의 주역이다.

도쿄 도립 건강·장수 연구소는 많은 노인이 다양한 사회 참여와 공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그 효과를 연구했다. 그러자 의외의 소득이 발견됐다. 자원봉사에 참여한 시니어들이 그렇지 않은 동년배보다 나중에 근육이 더 튼실했고, 친구 수도 더 많았고, 노쇠가 지연됐다. 남을 돕는 게 나를 도운 셈이다.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에 6년간 참여한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MRI를 찍어보니,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 속의 해마가 같은 나이대보다 덜 위축돼 있었다. 그림책 구연이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어르신에게는 기억력을 가져다 준 것이다.

일본은 이런 세대 교류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애쓴다. 우리나라는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가 나이 들어가면서 '젊은 은퇴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65세 이상 계층에는 노인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많다. 그들이 다양한 시니어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통해 서로 돕는 건강한 고령사회를 이뤄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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