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16] 우유는 '보양식'… 분유에 물 탄 '가짜' 범람 "찬 우유는 소화 안 돼" 끓여 마시기도

    입력 : 2018.04.18 03:12

    1975년 1월 14일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 도중 우유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나는 지금도 데우지 않은 우유를 먹지 못합니다. 어릴 때 꽁보리밥에 깍두기를 먹고 컸기 때문에 찬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헌법도 우리에게 맞는 헌법 아니면 안 됩니다." 당시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론에 맞서, '한국 실정에 맞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비유였다(조선일보 1975년 1월 15일 자). 주목되는 건 대통령이 '소화하기 어려운 것'의 대표적 사례로 우유를 꼽았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로 지난 시대엔 우유만 먹으면 탈 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우유를 별로 마시지 못하고 자랐기에 유당 분해 효소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1962년 2월 시작된 학교 우유 급식 모습.
    1962년 2월 시작된 학교 우유 급식 모습. 서울의 한 초등학교 1학년생들이‘양은그릇’에 따라준 한 홉(약 180mL)씩의 우유를 마시고 있다. /조선일보 DB
    허리띠 졸라매던 시절, 우유란 소화하기는 어려웠어도 몸 생각할 때면 챙겨 먹으려 했던 식품이었다. 1950년대 군 당국이 영양실조에 빠진 병사들에게 원기를 회복하라며 특별 지급한 게 '신선한 목장 우유'였다. 1970년대 강원도 탄광들도 광원들이 갱(坑)에 들어가기 전 '사기 진작'을 위해 우유 한 잔씩을 제공했다. 우유가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해 주는 보양식 같은 대접을 받은 셈이다.

    1960년대 초반엔 전국 초등학생 400여만명 중 100만명 이상이 결식아동이었다. 영양실조를 우려한 정부가 1962년 2월부터 시작한 게 초등학교의 우유 급식이었다. 처음엔 서울의 6개 초등학교 1학년생 4000여 명에게만 하루 한 홉(약 180mL)씩 먹였다. 1970년 가을엔 학교에서 준 우유를 마신 어린이들의 배탈이 잦았다. 학부형들은 "날도 쌀쌀한데 찬 우유를 먹였기 때문"이라며 뜨겁게 데워서 먹이라고 당국에 집단 민원을 냈다. 그러나 학자들로부터 "우유를 데우면 영양소가 파괴되며 세균도 오히려 늘어난다"는 비판을 듣고 머쓱해졌다(경향신문 1970년 11월 26일 자). 그래도 냉장 유통이 어렵던 탓에 여름마다 우유 식중독 사고가 터지면 신문은 "우유를 팔팔 끓여서 먹자"고 충고했다. 우유 마시는 걸 겁나게 한 또 다른 사건은 1970년대에 범람한 '가짜 우유'였다. 수돗물에 분유만 탄 건 좀 나은 편이고, 콩가루나 밀가루까지 섞은 가짜 우유도 나돌았다. 이런 엉터리 우유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신선한 우유는 꼭 '목장우유'라고 불렀다.

    우유를 그렇게 귀하게 여기던 시절은 어디로 가고, 이젠 소비가 격감해 낙농가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주 소비층이던 학생들 사이에 인기도 떨어졌다. 얼마 전 TV 뉴스 화면엔 일부 학생이 급식 때 받은 우유를 교실 창밖으로 집어 던져 터뜨리는 모습이 방영돼 충격을 줬다. 지난 16일 한 커피 전문점은 낙농가 단체와 함께 우유가 들어간 음료 소비 촉진 캠페인까지 시작했다. 시대가 바뀌면 가난했던 시절의 '소박한' 음식들을 잘 안 먹는 일은 있어 왔다. 우유의 경우는 다르다. 덜 마실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찬밥 신세가 된 건 탄산음료 등 자극적 음료 소비가 늘어난 탓이 크다고 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듯, 저급 식품이 고급 식품을 밀어내는 음식 문화의 퇴보가 아닌지 걱정된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