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이슈]납북·탈출·망명…인생이 영화였던 故최은희가 남긴 것들(종합)

입력 2018.04.17 07:23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원로 배우 故최은희.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뒤로 한채 고인은 떠났지만 고인이 남긴 작품과 연기에 대한 열정은 영원히 우리의 마음에 남을 것이다.
고인은 지난 16일 오후 5시 30분 경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남인 신정균 감독은 "신장 투석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셨다 임종하셨다"고 전했다. 고인의 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006년 4월 배우자인 故 신상옥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건강이 악화됐다. 별세하기 전까지 서울 화곡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신장투석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1926년 생인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본격적인 스크린 활동을 시작했다. '밤의 태양' '마음의 고향' 같은 작품에 연이어 출연한 그는 서구적인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고 김지미·엄앵란과 함께 1950~1960년대를 풍미한 트로이카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최은희는 지난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통해 호흡을 맞춘 故 신상옥 감독과 결혼했고 신 감독과 함께 한 '꿈'(1955), '젊은 그들'(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등을 포함한 13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또한 고인의 한국의 세 번째 여성감독으로써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등은 연출하기도 했으며 연출과 주연을 맡은 '민며느리'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진짜 영화 같은 삶은 1978년부터 시작됐다. 1976년 故 신성옥 감독과 이혼한 고인은 1978년 1월 자신이 운영하던 안양영화예술학교의 해외 자본 유치차 홀로 홍콩에 방문했다 해변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 납북 6년째가 되던 1983년 3월, 고인은 김정일로부터 연회에 초대받았고 그 자리에서 故 신상옥 감독과 재회했다. 신 감독은 고인이 납북되고 그해 7월 사라진 고인을 찾으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다고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신 감독의 자진 월북설도 제기되기도 했다.
다시 만나게 된 신 감독과 고인은 납북된 상황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밀사' 등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러다 두사람은 김정일의 신뢰를 얻어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미국 대사간에 집입해 망명에 성공했고 이후 10년 넘게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해 다시 고국땅을 밟게 됐다. 고인과 신 감독의 영화 같은 납북, 탈출, 망명스토리는 지난 2016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로스 아담·로버트 캐넌 감독)을 통해 알려져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다.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고인은 극단 '신협'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를 기획하며 연기와 문화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06년 4월 신 감독을 떠나 보낸 뒤 (향년 80세)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폭풍 같은 삶을 지나오면서도 연기와 영화에 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故 최은희. 고인이 남긴 영화와 열정은 영원히 후배 영화인들의 마음에 남을 것이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진행된다.
smlee032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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