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家의 할머니 "연명 치료는 안 받겠습니다"

조선일보
  • 정지섭 기자
    입력 2018.04.17 03:01

    투병하던 92세 바버라 부시 여사, 의학치료 대신 편안한 돌봄 결정
    소탈함·유머로 美국민 사랑받아… 자녀 잘키운 어머니로도 손꼽혀
    즐겨 착용 '세줄 진주목걸이' 묻자 "주름 가리려 한건데 소용없어져"

    미국 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 재임 기간(1989~1993) 백악관 안주인이었던 바버라 부시(92) 여사가 투병 끝에 모든 의학적 치료를 중단키로 했다.

    부시 전 대통령 가족 측은 15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최근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했던 바버라 여사가 가족 및 의료진과 상의 끝에 추가적인 의학 치료를 받지 않는 대신 편안한 돌봄(comfort care)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바버라 여사는 오랫동안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고생했으며, 최근 폐·심장질환 및 기관지염 등이 겹쳐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버라 부시는 남편(재임 1989~1993)과 아들(2001~2009)의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본 유일한 미국 여성이다. 바버라 부시 부부가 2015년 초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남자 농구 지역 결선이 열린 휴스턴 체육관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버라 부시는 남편(재임 1989~1993)과 아들(2001~2009)의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본 유일한 미국 여성이다. 바버라 부시 부부가 2015년 초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남자 농구 지역 결선이 열린 휴스턴 체육관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치료 중단 결정에 앞서 지난 주말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 등 슬하 자녀와 손자·손녀들이 텍사스주 휴스턴 집에 모여 바버라 여사 곁을 지켰다. 바버라의 케이스는 의학계에서 '소극적 안락사'로 분류된다. 의료진이 개입해 직접 환자의 생명을 멈추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갑작스러운 바버라의 투병·치료 중단 소식에 미국 정치권과 사회 각계각층에선 한목소리로 바버라의 편안함을 기원하고 있다. 바버라 부시의 별명은 '국민 할머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과 소박하고 인간적 면모로 역대 어느 퍼스트레이디보다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 왔다. 출판사 간부의 딸로 유복하게 자란 그는 열아홉 살 나이에 대학을 중퇴하고 해군 소속 비행사였던 부시와 결혼한 뒤 지금까지 73년을 함께 살았다. 미 대통령 부부의 최장 기간 혼인 기록이다.

    바버라는 미국 사회에서 '자녀 교육 잘한 어머니'로도 첫손 꼽힌다. 그는 자녀·손주들 사이에서 '집행자(enforcer)'로 불릴 만큼 엄격했다. 미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에 있는 부시 집안의 여름 별장은 손자 손녀들 사이에서 '신병훈련소(boot camp)'로 불렸다. '수건을 제 위치에 둬라' '옷을 아무 데나 두지 마라' 등 '집행자' 바버라가 붙인 생활수칙 메모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버라 부시가 퍼스트레이디 시절인 1992년 휴스턴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아들 조지 W 부시와 다정하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바버라 부시가 퍼스트레이디 시절인 1992년 휴스턴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아들 조지 W 부시와 다정하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맏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바버라가 "언제나 최고의 충고를 해줬다"고 했고,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둘째 젭 부시 전 플로리다주지사는 "어머니는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대통령이 되었을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 재임 시 직언과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바버라의 트레이드마크인 성성한 백발에는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1953년 세 살배기 딸 폴린을 폐렴으로 잃을 때 받은 스트레스로 머리가 탈색되기 시작해 하얗게 세어버렸지만 염색하지 않고 그냥 둔 것이다. 그는 훗날 "변해버린 머리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중들에게 '국민 할머니' 이미지로 각인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바버라를 '국민 할머니'로 자리매김하게 된 다른 동력은 인간적인 소탈함과 유머 감각이다. 그는 남편의 대통령 취임식 때부터 착용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세 줄짜리 굵은 모조 진주목걸이에 대한 뒷얘기를 2015년 TV 인터뷰에서 들려줬다. "원래 주름을 가리려고 목걸이를 한 건데 이제는 소용이 없어졌다. 이제는 얼굴 전부가 주름 아니냐." 그의 솔직한 말에 많은 미국인들이 미소 지었다. 바버라 부시는 퍼스트레이디 직에서 물러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바버라 부시 재단'을 설립해 미국 사회의 문맹 퇴치 운동에 앞장서 왔다.

    바버라는 연명 치료 중단에 앞서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차분히 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전 대통령 가족 측은 "바버라 여사는 날로 건강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신앙에 의지해 돌처럼 굳건했고, 자신보다 오히려 다른 이들을 걱정했다"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