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김정은의 담대함과 솔직함은 없는 자의 허장성세"

조선일보
  • 리 소테츠 일본 류코쿠대학 교수
    입력 2018.04.17 03:13

    北 김정은의 "땅딸보" 발언 화제
    정상 국가 지도자像 보여주고자 활달하고 인간적 모습 연출하지만
    北 지도자들이 견식 있고 능수능란한 모습 보여줄수록 나라는 가난해지는 사실 직시해야

    리 소테츠 일본 류코쿠대학 교수
    리 소테츠 일본 류코쿠대학 교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초 한국 특사단을 만나 "난 땅딸보"라는 농담을 했다는 한 언론 보도를 놓고, 한국 정부 관계자가 "어렵게 만들어진 한반도 긴장 완화 분위기를 해치는 보도를 삼가 달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 정보 당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김정은의 키는 169~172㎝ 정도인 것 같다. 굽 높은 구두를 신기도 한다는데 확인된 바는 없다.

    김정은은 "농구를 하면 키가 큰다"는 어머니 고용희의 말을 듣고 농구를 열심히 했다는 믿을 만한 증언이 있다. 어릴 때는 농구공을 안고 자기도 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정말 땅딸보라고 하는 '그런 가볍지 않은 농담'을 했다고 해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아버지 김정일은 스스로를 '난쟁이 똥자루'라고 했었다. 납북 여배우 최은희가 처음 저녁 초대를 받았을 때, 김정일은 "남조선 아이들이 나보고 식물인간이라고 떠들어 대는데 어떻습니까?"라며 한 말이다.

    김정일의 나이가 지금 김정은과 비슷한 30대 중반이었을 때였다. 그런데 두 사람의 농담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김정일은 자신의 '결점'을 완전히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김정은은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나는 땅딸보가 아니지 않으냐"고 얘기한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콤플렉스와 허영도 있지만, 김정일이 더 자신감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을 비교해 본다면 김정일은 인간적인 부분이 많았다. 어린 김정남을 스위스에 보내 놓고 아들 생각이 나서 전화통을 붙들고 엉엉 울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고, 병 치료차 프랑스로 떠난 고용희 생각이 나서 서로 사랑했던 시절 함께 들었던 '뒤늦은 후회'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는 증언도 있다.

    그런데 김정은은 다르다. 스위스 유학 시절 평양과 나눈 전화 대화를 직접 들었다는 정보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담배를 끊어라'(김정은은 중학교 때부터 담배와 술을 즐겼다)는 여자 친구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했다고 한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김정일은 또 막내딸인 김여정을 부를 때면 '귀엽고 귀여운 우리 여정아'라고 부를 정도로 가족에게 살뜰한 편이었다. 자기를 보좌한 참모들을 작은 실수로 처형한 적도 없다.

    그런데 김정은은 이유야 어떻든 어린 시절 자기를 안아 준 고모부를 처형하고, 같은 아버지를 둔 이복형(異腹兄)을 독가스로 죽였다. 김정은의 동의 없이 김씨 일가 친족을 죽일 수 있는 세력이 북한에는 없다.

    그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함인지, 요즘 김정은은 정상 국가의 지도자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쓰고 있다.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고 한국 특사단 일행을 마중했고 평양을 방문한 한국 예술인들과 만났을 때는 농담까지 섞어가며 환대했다고 한다

    김정은 주위 사람들도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리설주가 김정은 위원장을 '우리 남편'으로 불렀다는 사실이 그렇다. 한국 특사단을 평양 옥류관에 초대한 김영철은 "원래 평양 인민들은 냉면을 두 그릇씩 먹는다"며 1인 2그릇을 권했다고 한다.

    하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들을 보며 필자는 확신한다. 김정일처럼 김정은도 국제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본질적으로 북한 지도자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평양에서 비행기로 1~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베이징을 차량이 21개나 되는 1호 열차를 타고 시속 50㎞로, 50여 시간을 허비하며 다녀간 것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전통이다. 지난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김정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이나 외국인을 만났을 때는 스스럼없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법규(法規)를 초월하는 존재로 있고 싶어 하는 욕망은 김일성과 김정일 모두 그랬다. 김정은도 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북한의 3대(代)에 걸친 지도자들은 견식도 있고, 활달하고, 심지어 인간적이기도 했고, 외교에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잘하면 잘할수록' 나라는 점점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정은은 70년 전 한국에 전기를 공급했던 북한이 지금은 경제 규모가 한국의 삼성전자 한 개 회사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로 전락(轉落)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점을 상기(想起)하고 대화에 임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의 담대함과 솔직함은 없는 자의 허장성세(虛張聲勢)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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