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19] 졸고 있는 英 옥스퍼드 대학생들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 2018.04.17 03:11

    윌리엄 호가스, 강의실의 학자들, 1736년, 종이에 에칭, 22×18.6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윌리엄 호가스, 강의실의 학자들, 1736년, 종이에 에칭, 22×18.6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 명문 대학, 영국 옥스퍼드대의 18세기 강의실 풍경이다. 교수의 노트를 보니 라틴어로 'Datur Vacuum'이라고 씌어 있다. '진공(眞空)이 주어졌다' 혹은 '휴가가 주어졌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영국 최고의 풍자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1697~1764)다운 기막힌 제목이다. 현재 학생들의 머릿속이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이거나, 강의 시간 자체가 편히 쉬는 휴가 기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제일 윗줄 가운데를 필두로 잠이 들었거나, 졸고 있거나, 심지어 돌아앉았다. 그나마 눈을 뜬 얼굴들에는 무관심·짜증·의심이 서려 있을 뿐, 진지하게 강의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교수는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목청껏 강의 중이다.

    그는 당시 신학대학의 교무처장이었던 윌리엄 피셔다. 피셔는 호가스의 의뢰를 받고 기꺼이 이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한편 호가스의 아버지는 라틴어 학교의 선생이었다. 이들에게 대학이 조롱거리일 뿐이었을까.

    호가스는 상류층의 허세와 부도덕한 행태를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그려내서 판화로 대량 유통시키고 큰 인기와 부를 누렸다. 그는 그렇게 번 돈으로 영국 최초의 고아원, 파운들링 호스피털을 후원했다.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돈과 작품을 기부했을 뿐 아니라, 원내에 갤러리를 만들어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을 유치하고 이를 매개로 부유한 후원자들을 끌어모았다. 어쩌면 그가 조롱했던 건 대학이 아니라, 선택받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한 특권을 졸음으로 탕진하는 어리석은 이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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